▲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가운데)이 지난 9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책임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홍준표 기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 노동자 사건에서 항소심이 원청 대표와 안전보건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원청의 구체적인 업무상 주의의무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됨에 따라 1심에서 일부 유죄로 인정됐던 혐의마저 ‘면죄부’가 주어졌다.

검찰은 선고 하루 만에 대법원에 상고했다. 상고기간이 일주일임을 비춰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이다. 대전지검 관계자는 지난 10일 오전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판결문 분석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날 오후 상고가 결정됐다. 검찰은 법리 오해와 채증법칙 위반이 있다고 보고 무죄 판단이 나온 모든 부분에 상고를 제기했다.

‘원청 실질적 고용관계’ 부정한 항소심

항소심은 재판 시작부터 원청에 책임을 물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1심이 지난해 2월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1심은 김 전 대표가 안전사고와 관련해 구체적·직접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지 않았다. 유족측은 항소심에서 서부발전과 하청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하지만 항소심인 대전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최형철 부장판사)는 지난 9일 김 전 대표의 혐의가 없다고 재차 판단했다. 나아가 원청의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인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원청 법인 역시 원심(벌금 1천만원)이 무죄로 바뀌었다. 사실상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전부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서부발전과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부정한 해석이 무죄 선고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1심이 이같이 판단하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원심은 서부발전의 구체적·개별적 지시·감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소속 운전원들 사이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부인했는데 이러한 판단은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서부발전의 구체적인 지시·감독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 고용관계는 아니라고 상반되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의 시설을 이용해 작업했고, 인력운영도 원청 소관이라 서부발전의 안전조치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하청노동자들이 서부발전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청이 채용절차나 안전교육을 모두 정해 원청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서부발전의 한국발전기술에 대한 구체적 지시·감독 행위는 용역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급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지시권에 기초한 권한 행사에 해당한다”며 “근로의 실질에 있어 종속·고용관계는 그 의미를 달리해 반드시 동일하게 판단할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 사례가 없다는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과거 유사 사고, 법원 “현저히 다른 사고”

특히 원청이 과거 하청에서 일어난 유사한 사고를 보고받았는데도 유죄가 인정되지 않은 부분은 주목할 대목이다. 재판부는 권유환 전 본부장이 안전보건 총괄책임자로 지정돼 김병숙 전 대표가 구체적인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김 전 대표가 보고받은 하청의 안전사고는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컨베이어 설비의 위험이 조명되거나 개선방안에 대한 지적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구체적 설비의 형태나 작업방식이 현저히 다른 컨베이어벨트까지 (사고예방)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권 전 본부장과 관련해서도 ‘석탄취급설비’ 업무가 분리돼 있다는 이유로 1심과 달리 업무상 주의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운전원들의 작업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거나 “컨베이어벨트에 방문한 적도 없다”는 권유환 전 본부장의 진술에도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전 대표의 형량 감경에도 비슷한 판단이 깔렸다. 백 전 대표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에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이 줄었다. 그는 김용균씨가 숨지기 직전인 2018년 8월께 영흥사업소의 협착사고를 경험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고 재발방지를 강구할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는 있다”면서도 “위험성을 알면서 고의로 방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확히 같은 사고만 적용? 해괴한 결론”

결론적으로 항소심은 검찰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기소한 5가지 중 2가지(물림점 방호조치의무·2인1조 근무조치의무 위반)만 인정했다. 업무상 주의의무를 태만한 결과가 경합·중첩돼 일어난 사고이므로, 책임자 개개인의 과실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법조계는 모순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동종 사고가 아니라 컨베이어벨트 작업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판결에 따르면 정확히 재임 중에 동일한 설비에서 동일한 원인의 사고가 발생해야 이후 사고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는 해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청 대표 역시 과거 협착사고 산업재해조사표에 직접 날인까지 했는데도 주의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실질적 고용관계가 부인된 부분을 짚었다. 그는 “석탄운반업무는 구조상 분리될 수 없는 업무로, 원청의 지시·감독이 일상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외형적인 독립성을 이유로 원청의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험을 외주화한 많은 사안에 면책을 주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원청의 고용관계를 형식적으로 협소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분통을 터뜨렸다. 김 이사장은 <매일노동뉴스>에 “서부발전 대표도 모자라 본부장까지 무죄를 선고하고, 다른 가해자들 모두 감형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형평성에도 많이 어긋나며 국민 모두를 상대로 도덕성이나 정당성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