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중구 인천항 갑문에서 수리공사를 하던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 사장이 7일 인천지법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인천항만공사가 관리하는 갑판 모습.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인천항만 갑문의 정기적 보수업무를 핵심 업무로 삼는 인천항만공사가 인력·재정에서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한 하도급업체에 갑문 보수공사에 따른 산업재해 위험을 ‘외주화’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도 피고인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 사장은 근로자 사망 책임을 모두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공사는 책임이 없다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략)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근로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가 7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준욱(56) 전 인천항만공사(IPA) 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며 밝힌 양형이유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는 매우 이례적인 형량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7일 결심공판에서 최 전 사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오 판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갑문 수리공사 하도급업체 대표 A씨(52)에게도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인천항만공사 법인은 벌금 1억원을, 갑문 수리공사 하도급업체 2곳에는 벌금 5천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최 전 사장의 형량이 하도급업체 대표 형량보다 높다.

최 전 사장은 2020년 6월3일 인천 중구 인천항 갑문에서 수리공사가 진행될 당시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숨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갑문에서 H빔을 내리는 작업을 하던 B(사망 당시 46세)씨는 이날 오전 8시18분께 18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최 전 사장이 안전대 부착설비를 설치하지 않고, 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봤다.

‘도급인’ 판단 핵심, 법원 “규범적 해석해야”

최 전 사장의 형량을 가른 것은 ‘도급인’ 판단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 발주자’는 안전조치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도급인에 한해 안전관리 책임을 묻는다.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지에 따라 갈린다. 최 전 사장측은 재판에서 “발주자”라고 주장했다.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인 셈이다. 오 판사는 ‘규범적 해석’이 본질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시공을 주도했는지가 아니라 규범적으로 평가해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한 지위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에 맞춰 법령을 해석하면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고 봤다.

오 판사는 “(실제 지위가 아닌 사실관계로 해석했을 때) ‘위험의 외주화’라는 ‘갑질’이 산업현장에 만연하는 불평등 산업구조 형성을 법원이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항만공사가 시공 과정에서 하청업체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다는 취지다. 실제 항만공사 간부가 감독일지를 작성해 현장을 점검하고, 주간회의록과 설계도면 등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전제로 오 판사는 ‘위험의 외주화’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최 전 사장을 질타했다. 이번 사고 이전인 2016~2017년 이미 갑문 보수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망사고 2건이 발생한 점도 짚었다. 오 판사는 “항만공사는 사고 발생 8일 전 재해예방 전문지도 기관으로부터 안전대 부착설비 미설치 등으로 인한 추락사고 발생위험을 지적받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 판사는 “위험의 외주화는 건설공사 발주를 주된 업무로 하는 공공기관에서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그렇지 않으면 공공기관은 위험의 외주화를 허용받고, 민간업체는 그것을 금지당해 서로 불평등한 차별을 받는 것이 돼 중대재해를 예방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망사고 노동자 과실? “죽어 마땅한 잘못은 없어”

선고형을 결정한 배경도 주목할 대목이다. 최 전 사장의 양형이유와 관련해 오 판사는 “마땅히 최 전 사장과 항만공사를 엄히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도방지 조치나 추락방지 안전난간 설치 등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점에서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항만공사 태도(갑질)가 분명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산업안전관리공단(안전보건공단) 직원이 증인으로 출석해 “사업주 의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진술한 부분도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피해자’에 책임을 돌리는 태도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오 판사는 원청 현장소장의 양형이유와 관련해 “망인의 과실을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양형사유로 열거할 수는 없다. 누구의 어떠한 과실도 ‘죽어 마땅한 잘못’인 과실이라고 평가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며 “(유족과의) 합의 의미를 피해 근로자 본인과 합의한 것과 동등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피해자의 유족이라도 이미 사망해 목숨을 잃은 피해 근로자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어쩔 수 없이 합의한 처벌불원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실형 선고에는 법원의 ‘경미한 처벌’ 관행도 있다고 판단했다. 오 판사는 “산업현장에서의 안전 불감증에 기한 사망사고 발생 행위를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탄이 빗발치고 있다”며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근로자의 사망사고에 대한 법원의 경미한 처벌이 이 나라 근로자들에게 일터로 일하러 나가는 것이 곧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비장함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법문화를 조장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 실형 관행 비춰 이례적 실형, “원청 책임 인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원청 대표의 실형 선고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2020년 1월16일 시행한 이후 징역형이 선고된 비율은 약 2%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4월26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한국제강 대표의 형량보다도 높다.

법조계는 도급인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따른 결과라고 평가했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갑문 유지보수는 항만공사의 주된 업무인데 법원은 이를 규범적으로 판단해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로 해석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해석이 필요한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뒀더라도 도급인의 책임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의미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그동안 법원의 해석과 양형 판단이 위험의 외주화라는 불평등한 산업구조를 조장해 왔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점 등을 긍정할 만하다”며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을 통해서도 계속해서 법원이 시정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 김용균 노동자 항소심 판결에도 문제가 됐던 것처럼 대기업일수록 법원이 고의성 판단을 소극적으로 하는 등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판결은 오히려 원청 책임으로 인정해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최 전 사장은 재범이 아닌데도 실형이 선고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인천항만공사 전경. <인천항만공사 홈페이지>
▲ 인천항만공사 전경. <인천항만공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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