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과로에 시달리다 심정지로 숨진 하청노동자의 유족에게 원청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청노동자의 업무상 질병에 관해 이례적으로 도급인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이 인정됐다는 평가다.

주야 교대근무에 공기 단축 압박
법원 “원·하청, 유족에 각 3천만원 지급”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64단독(하효진 판사)은 현대건설 하청노동자 A씨의 자녀들이 현대건설과 하청업체 B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산)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현대건설과 B사는 공동으로 유족에게 각 3천400만원(위자료 700만원 포함)을 지급해야 한다. 원하청 업체는 지난 8일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B사 소속 타설반장인 A씨는 2019년 12월 야간 타설 작업을 마치고 차를 운전해 귀가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심정지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공사는 현대건설이 동해항 방파제 축조공사를 조달청으로부터 도급했고, B사는 현대건설로부터 준설·설치공사를 하도급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으로 판정해 유족들에게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했다.

이와 별개로 A씨 자녀들은 원하청을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측은 겨울 한랭·콘크리트 먼지 과다노출 등 가혹한 근무환경 개선 조치가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또 주야간 교대근무와 하루 평균 9.5시간 작업·휴일 부족·공기 단축 압박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대건설이 도급인으로서 고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쟁점은 도급인의 안전배려의무 인정 여부다. 법원은 A씨가 업무상 과로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며 현대건설과 B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사용자가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대법원은 2000년 5월 “사용자는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법원 “해변에서 겨울 한랭 지속 노출”
“도급인 예외적 안전배려의무 인정” 의미

법원은 A씨의 과로와 스트레스를 인정했다. A씨는 2019년 9월부터 2주 간격으로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타설공 업무 외에 현장관리도 맡았다. 사고 이전 4·12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각각 50시간21분, 45시간16분에 달했다. 하 판사는 “상당한 기간 고인의 업무부담이 가중됐고, 고인은 해변의 공사현장에서 야간 작업을 하며 겨울 한랭에 장시간 노출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고 직전 동료들에게 스트레스와 가슴 통증을 호소한 부분도 작용했다. 하 판사는 “사고 이전에 고인에게 흡연과 당뇨병 의증 이외에 심장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들로서는 고인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업무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데도 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가 휴식을 취하거나 과중한 업무수행을 지시받았을 때 적극적으로 알려 업무를 조정하는 등 자기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 △흡연력과 질환 의심 정황이 사고 발생에 일부 원인이 됐다며 현대건설과 B사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또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유족연금은 공제한다고 밝혔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도급사업주인 현대건설에 예외적으로 하청노동에 대한 안전배려의무가 인정됐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법원이 도급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예방조치를 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 도급인의 안전배려의무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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