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세 번째)이 9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책임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작업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한 원·하청 책임자들의 형량이 항소심에서 대폭 감경됐다. 1심에서 일부 유죄로 인정됐던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단된 데 따른 결과다. 유족과 노동계는 크게 후퇴한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유죄→무죄’ 바뀐 태안발전본부장
책임자들, 벌금형·금고형 집행유예 감형

대전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최형철 부장판사)는 9일 오후 선고공판을 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서부발전 대표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도 원심(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서부발전 법인 역시 1심의 벌금 1천만원에서 무죄로 선고됐다.

하청업체도 형량이 깎였다.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는 1심의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에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이 감경됐다. 이근천 당시 태안사업소장도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에서 징역 1년2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량이 4개월 줄었다. 한국발전기술 법인은 벌금 1천200만원을 선고받아 1심보다 300만원이 줄어들었다.

나머지 서부발전 관계자 6명은 금고 6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3명은 벌금 700만원~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원·하청 책임자의 형량이 1심에 비해 낮아진 셈이다. 검찰 구형도 선고에 반영되지 못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공판에서 김 전 대표와 백 전 대표에게 1심과 같은 징역 2년과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원·하청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 2천만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풀코드 스위치 불량’ 등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장은 1시간이 넘게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양형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 중 누구 한 명의 결정적인 과오에 기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피고인들이 산업현장에서 안전보건조치의 중요성을 다소 간과하고 각자의 업무상 주의를 해태한 결과가 중첩돼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 것으로, 개개인의 과실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원·하청이 유족에 금전을 배상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이행한 부분도 유리한 정상으로 판단했다.

법원 “개인 과오로 사고 발생 아냐”
원청 ‘실질적 사용자’ 부정한 1심 유지

형량이 대폭 낮아진 데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선고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재판부는 서부발전과 하청노동자는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한국발전기술이 독자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소속 노동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했다고 봤다. 방청석에서는 “이게 말이 되나” “도급인이 아니라 실질적 사용자”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재판부 판단으로 김병숙 전 대표와 권유환 전 본부장은 모두 책임을 벗었다. 재판부는 김 전 대표가 사고 당시 컨베이어벨트 모습을 확인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를 부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가 의무 위반사항을 알면서도 설비를 방치하거나 작업을 지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권 전 본부장은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던 업무상과실치사와 작업중지위반의무까지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며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안전조치의무 위반은 고의범만 처벌되는데, 피고인이 설비의 구체적 현황이나 운전원 작업 방식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위반사항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 한국발전기술에 설비를 제공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석탄 설비와 위탁용역 관리 업무에 직접 관여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이는 추상적 의무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김용균씨 어머니 “사람 죽이는 판결”
2심 선고 당일 다른 발전노동자 추락사

선고 직후 김병숙 전 대표는 소감을 묻는 취재진을 피해 황급히 떠났다. 산재 유족들과 노동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재판 결과다. 재판장이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며 “이런 재판으로 산재를 줄일 수 있겠느냐”고 성토했다.

그러면서도 “사용자가 제대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각인시킬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김덕현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1심보다 훨씬 후퇴한 판결이 선고됐다”며 “설비뿐만 아니라 법원 판결에도 노동자 안전에 대해 너무나 많이 구멍이 뚫린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또 다른 발전노동자가 이날 숨진 사실을 언급했다. 김용균씨의 동료인 이태성씨는 “재판이 열린 오늘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발전소에서 50대 노동자가 낙탄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며 “김병숙 전 대표가 왜 처벌돼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균재단은 15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항소심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가운데)이 9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방청한 뒤 선고 결과에 실망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가운데)이 9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방청한 뒤 선고 결과에 실망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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