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하청노동자가 건물에서 던진 쇠파이프에 맞아 원청 직원이 출근 중 상해를 입었다면 원청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하청 직원의 불법행위로 사고가 났더라도 회사가 사전에 통행로에 관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청노동자 불법행위, 원청 책임 쟁점
1심 “소속 직원 안전보호의무 위반”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경북 영천시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B사 직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산)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소송이 제기된 지 5년 만이다.

A씨는 2017년 6월19일 오전 7시께 공장 증축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증축공사를 맡았던 하청업체 C사 소속 노동자가 현장 2층에서 던진 비계 파이프에 맞은 것이다. A씨는 전날 퇴사했지만, 상사의 부탁으로 하루 더 출근하던 중이었다.

당시 A씨를 목격한 현장 1층 작업자는 2층 작업자에게 파이프를 던지지 말라고 하고, A씨에게 잠시 멈추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A씨는 공사장을 지나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공장 출입구로 뛰다가 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등뼈 골절과 뇌진탕 등 상해를 입었다. 이 사고로 약 4개월간 요양하며 1천7백여만원의 휴업·장해급여를 받았다.

이와 별개로 A씨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직원에 대한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하청노동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도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A씨가 이미 퇴사한 상태인데다 하청의 공사에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하지 않았으므로 사용자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1심은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회사로서는 소속 근로자가 공사 현장 주위를 지나갈 때 낙하물 등으로 인해 다치지 않도록 안전망 등 보호시설을 설치해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 배려의무가 있다”며 “그럼에도 이를 게을리함으로써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회사는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B사의 책임 비율을 60%로 제한했다. 하청노동자 잘못으로 사고가 났고, A씨 역시 파이프 등 공사 자재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신속하게 공사 현장을 통과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사측은 하청이 고용한 직원의 불법행위에 책임을 질 수 없다며 항소했다.

2심 “하청 불법행위가 사고 원인”
대법원 “통행로 안전조치 마련했어야” 원심 뒤집어

항소심은 사측 손을 들어줬다. 하청 직원의 불법행위에 따른 사고이므로 B사에 사용자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는 공사 현장의 안전시설 미비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C사 직원이 비계 파이프를 던진 불법행위에 의해 발생했다”며 “B사에 보호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불법행위 발생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C사 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B사의 사용자책임도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B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비록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수급인인 C사 직원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것이기는 하나, B사가 사전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잘못도 사고의 발생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회사가 공사 현장 근처 사무실에 드나드는 직원들이 안전사고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사는 소속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사무실에 드나들 수 있도록 사전에 통행로에 관한 안전조치를 직접 취하거나 수급인에게 지시 또는 요구했어야 한다”며 “원심이 보호의무 위반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사용자의 근로계약상 보호의무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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