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재단 주최로 19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처벌없는 김용균재판1심, 재판부에 묻다> 토론회에서 김미숙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낙탄을 제거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난 2월 대전지법이 원청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6월 예정된 2심 선고를 앞두고 하청에 대한 안전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원청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법조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김용균은 서부발전 직원 아니라는 1심
“법원의 온정주의적 시각 드러난 판결”

김용균재단은 19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이제, 재판부에 묻다’ 토론회를 열었다. 고 김용균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14명의 원·하청 관계자들 중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없다. 한국서부발전의 경영책임자인 김병숙 전 대표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인이 소속돼 일하던 하청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전 대표에 대해서는 4개 혐의 중 업무상과실치사와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해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피해자 대리인 박다혜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안전범죄·중대재해와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원청과 최고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법적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가볍게 판단되는지 드러난 전형적인 판결”이라며 “산업안전보건 범죄에 대한 온정주의가 재판실무에서 뿌리 내리고 있다는 불명예스러운 평가가 뒷받침된 양형 관행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연 평균 9명 이상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입었고,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인 점 △컨베이어벨트에서 동종·유사한 협착사고가 수차례 발생한 점 등 유사한 사고가 여러 번 반복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원청이 △9·10호 발전기의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모든 설비를 소유하고 운영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점 △하청의 작업인원에 관여하고, 안전회의를 통해 하청 소속 노동자들에게 직접 작업 지시를 하는 등 관리·감독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원청과 하청 소속의 운전원들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다는 점을 부정했다.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사업주라고 볼 수 없어 노동자 사망으로 인한 법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여부는 ‘누가 사업장 내 위험을 통제할 권한과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이번 판결과 같이 원청의 사업주 책임을 소극적으로 해석한 판결들로 사업주 책임의 공백이 발생해 왔다”고 지적했다.

“사고 반복했다면 원청의 업무상 중과실”
“김용균 사건, 2심에선 원청 책임 물어야”

김용균 사망 사건 재판은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 재판과 비교된다. 19살의 어린 노동자였던 김군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 사건에 대해 2019년 대법원은 원청인 서울메트로 대표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도 김용균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원·하청 관계자 모두 실형을 선고받지는 않았지만,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용역업체 노동자인 김군 사망의 책임을 물었다는 데 차이가 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의 경우 사고 위험에 대한 서울메트로 대표이사의 지배가능성·예견가능성 등이 모두 인정됐다”며 “법원은 ‘원청 대표 재직 당시 김군 사망사건 이전에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해 이 대표가 위험요인이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김용균 재판의 1심 판결은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이사가 취임한 뒤 9개월이 지나는 동안 컨베이어벨트의 구조와 위험성을 몰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회전하는 컨베이어벨트에 가까이 다가가 작업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적이며, 발전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굴뚝과 컨베이어벨트에 경영책임자가 가보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들은 재판 내내 줄곧 안전관리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김용균 사망사건에 앞서 한국서부발전에서는 2008년부터 10년 동안 44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했고, 12명이 사망했다.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은 사고 전 컨베이어 설비 개선을 요구했으나 한국서부발전이 이를 묵살했다고 증언했다. 한국서부발전이 관리의무를 다하지 않은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2심 판결에서 원청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법원은 1심 판결문에서 사건을 막지 못한 피고인들의 책임과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가볍지 않음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며 “비슷한 사고가 이전에 몇 차례 반복했다면 재해 발생가능성을 알면서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인식이 있는 업무상 중과실’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산재사망 사건에 대해 솜방망이보다 가벼운 깃털 같은 양형이 선고되다 보니 안전조치나 안전관계법령을 기업이 준수하도록 하는 요인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며 “법원의 판결이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안전을 무시하도록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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