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마장이 멈췄다. 한국마사회는 무관중으로 진행하던 모든 경마경기를 지난 1일부터 중단했다. 마사회는 매주 70억원가량의 상금을 사실상 적자로 부담하며 경마경기를 이어 왔지만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대신 꺼내 든 것은 온라인 마권 발매다. 현재 각 경마장이나 장외발매소에서만 살 수 있는 마권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에도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적이 있다. 올해는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안을 냈다. 김승남 의원쪽은 “코로나19로 인해 말산업 전체가 위험에 처했다”며 “마사회가 그간 경마경기 수익으로 충당해 온 세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대 목소리는 기수와 마필관리사쪽에서 나온다.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온라인 마권 발매는 도박중독을 양산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위기를 틈타 온라인 마권 발매라는 숙원을 이루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쟁점은 두 가지다. 말산업은 정말 위기인가. 온라인 마권 발매는 도박중독을 부추길까.

정부 “올해 말산업 고사위기는 넘겼다”
경마중단 이어지면 내년은 위험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말산업계를 직접 지원하는 축산발전기금 예산은 1조1천235억원이다. 이 가운데 마사회에서 충당하는 재원은 약 980억원이다. 11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법안을 발의한 김승남 의원쪽은 올해 축산발전기금 세수 935억원가량이 ‘펑크’ 날 것이라고 전망치를 제시했다. 마사회 외에 축산발전기금을 구성하는 다른 재원도 마사회만큼은 아니지만 감소가 예상된다.

정부는 생각이 다르다. 농림부 관계자는 “올해 지출예산은 이미 편성이 끝나 변동 여지가 없다”며 “문제가 되는 것은 세수가 실제 줄어들 우려가 있는 내년인데, 마사회 비중이 작진 않으나 정부지원을 늘려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을 기르는 생산자도 올해 고비는 넘긴 상황이다. 경주마를 사고파는 마시장은 올해 8~9차례 정도 크게 열렸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인 2월 초 오프라인 마시장이 열렸고, 이후에도 온라인 비대면 마시장을 통해 경주마 판매가 이뤄졌다. 다만 경마경기를 지속적으로 중단하면 내년 말 판매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행산업감독위 “경마, 중독 유병율 33.8%”
도박중독 우려 있지만 ‘상한제’로 안전장치


도박중독도 의견이 갈린다. 2018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카지노와 경마 등 사행산업을 이용한 사람들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33.8%나 된다. 온라인 마권 도입이 합법도박으로 인한 도박중독을 늘릴 것이란 우려에 힘을 싣는 결과다.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실장은 “온라인 마권 도입시 합법도박이 늘 텐데 이로 인한 도박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마사회의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김승남 의원은 법안에 안전장치를 뒀다. 상한제다. 개인이 살 수 있는 마권의 상한액을 정해 뒀고, 마사회 차원에서 판매 가능한 총량도 정해져 있는 구조다. 더 팔래야 팔 수가 없다. 다만 이미 사행산업통합감독위도 유사한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국회 검토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마장이 위치하거나 축산업 종사자가 많은 지역구가 아닌 의원들의 관심이 적다. 대신 이들 의원을 중심으로 온라인 마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되레 높은 편이다.

잇따른 기수·마필관리사 사망사고는 뒷전?
“마사회, 사회문제 개선 노력 선행해야”


일각에선 온라인 마권 발매에 앞서 마사회쪽의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박중독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사회가 선제적으로 예산을 들여 구축하고, 점진적으로 2040년까지 축소를 검토한다는 장외발매소 역시 속도감 있게 폐쇄하는 등 경마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별 다른 대책 없이 구조적 문제만을 언급하는 기수와 마필관리사에 대한 처우와 고용관계 개선도 사회적으론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말산업 위기를 빌미로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해 달라는 요구는 진단과 처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며 “마사회가 책임 있는 자세로 도박중독 예방예산을 지원하고, 먼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인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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