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8일 광주 광산구 CJ대한통운 첨단서브터미널 인근에 택배 차량이 폭우에 침수된 모습. <자료사진 택배연대노조>
집중호우로 배송이 지연돼 발생한 상품 변질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택배사가 정부 약관을 이유로 사고 접수조차 받아 주지 않는 사이 고객 불만에 노출된 택배노동자가 혼자 변상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재난이 일상화하고 있는 터라 같은 상황이 반복할 수 있는 만큼 꼼꼼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6일 공공운수노조 택배지부(지부장 박성기)에 따르면 울산에서 택배노동자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도균(42)씨는 최근 고객에게 20만원을 물어 줘야 했다. 집중호우로 터미널이 침수돼 간선차에서 물건을 제때 내리지 못해 생긴 일로, 김씨 과실은 없었지만 택배노동자가 고객의 항의·불만을 무시하기는 불가능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사는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발생한 운송물의 멸실·훼손·연착에 대해 배상책임이 없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 표준약관을 들어 사고처리 접수를 거부했다. 표준약관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택배기사도 물건 배상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불합리한 배상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택배사 나 몰라라, 혼자 뒤집어쓴 기사

사건은 지난달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택배지부 울산택배지회 CJ대한통운택배분회장이기도 한 김도균씨는 그날 여느 때처럼 고객에게 20만원 상당의 한우를 집하해 북울산서브터미널로 옮겼다. 평소대로라면 상품은 집하 다음 날인 8일 대전허브터미널을 거쳐 북광주터미널(배송지 인근)로 이동한 뒤 고객에게 배송돼야 한다. 신선상품은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같은달 8일 북광주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했다. 서브터미널 물류기기와 택배차량이 침수됐다. 상품을 실은 간선차는 대전허브터미널에서 북광주1서브터미널로 이동했지만, 북광주 지역 침수로 물건을 바로 하차하지 못했고, 9일 오전에 물건을 하차했다. 같은날 오후에야 수령자에게 전달된 한우는 이미 상한 상태였고, 고객 민원은 집하자인 김씨에게 전달됐다. 김씨는 회사에 사고를 접수했다. 사고처리가 접수될 경우 배송 과정에 있는 집하기사, 집하 대리점, 터미널 상·하차 도급사, 배송 대리점, 배송기사 등의 책임소재를 따져 물건 가격을 나눠 책임을 진다. 파손 시점이 불명확한 경우 5분의 1로 나눠 배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의 기대는 무너졌다.

“회사는 천재지변은 회사에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며 집하자가 물든지, 보낸 고객이 그 물건 가격을 떠안아야 한다고 했어요. 듣도 보도 못한 택배 약관을 들먹이면서요. 피해금액이 20만원인데, 20만원 벌려면 집하 몇 개 해야 하는 줄 아세요? 자그마치 200개예요.”

김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집하를 했던 7일 북광주 지역은 CJ대한통운이 공지한 ‘신선식품 및 긴급성 상품 집화 자제요청 지역’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회사가 내민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택배 표준약관(6월 개정)이다. 해당 약관 25조 사업자(택배사)의 면책 사유로 천재지변·전쟁·내란 등을 정하고 있다. 문제는 택배사가 택배기사 역시 배상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고객의 민원을 적극 조정하지 않은 데 있다. 김씨가 대리점과 맺은 계약서에는 천재지변 발생시 면책 사유가 기재돼 있지 않다.

“물류비용 축소에 파손 위험은 커져”

불합리한 상황은 김씨가 아닌 다른 택배기사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애초 배상 시스템에서 원청은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박성기 지부장은 “집하기사가 물건을 문제 없이 올려 보내도 간선차에 물건을 적재하는 과정에서 위쪽 물건 무게 때문에, 혹은 간선 상·하차 작업이나 배송 과정에서 파손되는 경우가 있다”며 “사고처리가 접수되면 집하기사와 집하 대리점, 허브터미널 간선 상·하차 인력 도급사, 배송 대리점, 배송기사가 각각 5분의 1의 책임을 진다”고 설명했다. 배송기사의 경우 상품의 상태가 온전치 않을 때 일명 별도 스캔 과정을 거쳐, 책임을 면하기도 하지만 집하기사는 이조차 할 수 없다. 박 지부장은 “물건 소유자는 구매를 한 고객에게 있지만, 유통(배송)한 것은 원청”이라며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사고라도) 사고 책임은 원청이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성욱 택배연대노조 사무처장은 “물류비용을 아끼려 하나의 간선차에 최대한 물량을 많이 적재하려다 보니 벌크(다발 짓지 않고 흩어진 채로 막 쌓은 화물)로 화물을 실어 옮긴다”며 “그 과정에서 물건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부에 따르면 최근 CJ대한통운은 당일 배송 시스템(신선식품 포함)을 48시간 배송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도균 분회장은 “배송시간이 48시간으로 연장되면 회사는 상품 지연배송 혹은 변질의 책임을 피해 가지만 집하자는 면책할 길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회사나 집화점, 배송책임이 있는 배송점 모두 천재지변의 경우 귀책사유가 없어 변상 책임이 없다”며 “(물건을 보낸) 고객이 판매자에게 돈 주고 물건을 산 것을 환불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택배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집하 시점부터 D+48시간이 원래 원칙”이라며 “신선식품은 이틀 뒤 상할 우려가 있어 최대한 24시간 내 배송을 하도록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