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모든 해고를 금지하라.”

40명이 넘는 비정규 노동자가 회색빛 방진복을 갖춰 입고 한데 모였다. 이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외쳤다. 고객센터 노동자·봉제노동자·대리운전 노동자·방과후 강사 등으로 생업은 서로 달랐지만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선 비정규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불황의 충격을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었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방진복을 입고서라도 모여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며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천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투쟁은 “코로나19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불평등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모든 해고 금지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에게 휴업·실업수당 지급 △노조할 권리 보장 △모든 노동자에게 4대 보험 적용을 요구했다.

“코로나19 두 달 지났을 뿐인데
하청노동자 정리해고”


“무급휴직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노동자가) 무급휴직을 거부하면 (회사는) 정리해고에 들어간다, 직장폐쇄를 하겠다고 이야기해요. 아무도 막지 못해요.”

김태일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장이 호소했다. 한국공항은 한진그룹 자회사로 지상조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 지부장은 기내청소를 하는 한국공항 하청노동자로 이케이맨파워 소속이다. 이 회사는 최근 50여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김태일 지부장은 “10~20년 돈 잘 벌면서 보너스 한 번 안 주던 회사가 이제 와 두 달 경영이 어렵다며 해고한다면 해고를 인정할 수 없다”며 “자산매각·부동산 청산이라도 하고 난 뒤 (정리해고든 무급휴직이든) 이야기하라”고 비판했다.

감염예방에서도 뒷전이 된다는 하청노동자는 원청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조지현 철도노조 철도고객센터지부장은 “구로 콜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철도고객센터 상담사들은 항상 불안해한다”며 “하지만 환기도 안 되고 여전히 옆 사람과 붙어 앉아 쉴 새 없이 통화하는 근무환경은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조 지부장은 “하청업체는 ‘도급계약 항목에 안전비용이 없다’며 책임을 원청에 떠넘기고 원청은 ‘우리 직원이 아니니 책임이 없다’고 하청업체에 책임을 넘긴다”며 “원청이 직접고용해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콜센터 집단감염은 또 터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할 권리와 노동자성 인정 절실”

노조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공연예술인들은 법·제도 사각지대에서 시름에 잠겨 있다.

박구용 대리운전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365만장의 마스크를 확보하고도 단 한 장의 마스크도 대리운전 노동자에게 배분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코로나 재난은 노동기본권을 빼앗긴 특수고용 노동자의 꽉 막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한숨 쉬었다. 대리운전 기사인 박 수석부위원장의 3월 매출은 2월 대비 62% 줄었다.

이종승 공연예술인노조 위원장은 “공연예술계는 5월까지 관 주도 공연은 물론 민간 공연도 90% 이상 취소됐다”며 “하지만 예술가는 무직에 수입도 적어 대출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 예술가들이 요구해 온 것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예술인 고용보험법 통과였다”며 “정부와 국회는 하루속히 예술인 고용보험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호황의 과실은 위로 올라가고 재난의 고통은 아래로만 내려가는 사회가 코로나19 위기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며 “비정규 노동자들은 무조건적인 양보와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투쟁은 정부의 물리적 거리 두기 집중기간인 19일 이후 비정규직의 요구를 알리고 정부와 재벌에 책임을 묻기 위한 대규모 청와대 행진을 한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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