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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긴 박문진 지도위원 고공농성] ‘빨간 파카’로 견디는 칼바람 “이번엔 마침표 찍겠다”
▲ 최나영 기자

“자, 갑니다.”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영남대의료원 옥탑에서 끝에 고리가 달린 흰 헝겊끈을 내려보내자, 김지영 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사무장이 고리에 보온병이 담긴 에코백을 달았다. 박 지도위원은 끈을 끌어올린 뒤 이번엔 검은 봉투를 끈에 매달아 밑으로 내려보냈다. 안에는 쓰레기가 담겨 있다고 했다. 2019년의 마지막날 오후 1시께 대구 남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본 풍경이다. 마치 교대식 같은 식사 올려보내기는 하루 두 번 이뤄진다.

“전기 안 들어와 옷과 손난로로 추위 견뎌요”

영남대의료원 해고자인 박문진 지도위원은 원직복직과 노조 기획탄압 의혹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지난해 7월1일 의료원 옥상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장소는 옥상에 설치된 옥탑이다. 병원 본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서 내려 옥상으로 올라간 뒤, 흰색 옥탑 벽면에 수직으로 설치된 검은색 철제 사다리를 올라야 박 지도위원이 농성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 무릎 높이도 안되는 낮은 난간만이 박 지도위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난간 너머는 70미터 낭떠러지다.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난간 앞쪽으로 아파트며 주택이며 주변 건물들이 성냥갑처럼 작게 보였다. 옥탑에는 회색 천막이 한 동 서 있다. 박문진 지도위원이 생활하는 곳이다.

▲ 최나영 기자

영남대의료원은 외부인의 옥상 출입을 통제했다. 옥상 문에는 큼직한 ‘통행금지’ 문패가 붙어 있다. 병원측 보안요원이 동행해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아침과 점심 하루 두 번 김진경 영남대의료원지부장과 김지영 사무장만 식사를 올려보내러 옥상에 오른다고 한다. 박 지도위원은 “우리가 농성장에 들어갈 때도 사측에 통보하고, 사측이 농성장에 들어갈 때도 우리에게 통보하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한낮인데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 회색 천막이 펄럭였다. 한파주의보를 발령하게 만든 북서풍이 공중에서는 더 위세를 부렸다. 보통 때도 천막을 흔드는 바람 소리에 잠에 들기 쉽지 않다고 했다. 한밤중에는 바람 소리가 사람 소리처럼 들린다고도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칼바람 방패막이는 옷과 이불, 손난로뿐이다. 그는 장갑과 모자, 빨간색 파카와 솜바지로 중무장을 했다. 윗옷은 대여섯 겹씩 껴입는다고 했다. 빨간 파카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09일간 크레인 고공농성을 할 때 입었던 바로 그 옷이란다. 지난달 23일 그를 위해 도보장정에 나섰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일주일 만인 29일 영남대의료원에 도착해 그에게 이 옷을 건넸다.

“이게 히말라야 등정할 때 입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불 같아요. 근데 이거 주면서 ‘내려오면 줘’ 이러더라고요. 치사하게. 주면 그만이지.”

박문진 지도위원이 파카를 가리키며 농담을 한다. “몸을 움츠리고 잠을 자면 어깻죽지부터 온갖 몸 근육이 아프다”면서도 이런 말을 하며 그는 또 웃는다. “군인들이 쓰는 핫팩(손난로)을 10개씩 깔고 자는데 그게 그래도 온기가 오래 가요.”

▲ 최나영 기자

“병원 ‘해고자 복직’ 담은 조정안 거부”

추위 탓에 물이 얼어붙어 농성장에는 지난달부터는 수도 공급마저 끊긴 상태다. “생수로 고양이 세수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지금은 천막이 옥탑 바닥까지 내려오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며 “여름에는 하늘만 가리고 사방이 뚫린 천막을 치고 있어서 아래가 보이니까 어지럽고 힘들었다”고 전했다.

고공농성 목표는 명확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13년 (노조 정상화) 투쟁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지도위원은 “지금 복직이 돼도 정년이 2022년 초까지로 얼마 안 남았는데 그전에 마지막으로 투쟁해서 노조를 정상적인 궤도로 올리고 싶다”며 “후배(송영숙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복직도 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성이 해를 넘기는 상황은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는 “7월1일 옥상에 올라올 때 방한복을 준비해서 오긴 했지만 그래도 해가 가기 전에는 타결되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며 “노동자 현실이 만날 이래야 하는지 착잡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을 위한 사적조정 회의가 열렸지만 노사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조정위원들은 해고자(박문진·송영숙)를 2019년 11월1일부로 특별채용한다는 조정안을 냈는데 사측은 복직은 안 되고 이들에 대한 생활지원금만 지급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사적조정위원이 지난해 10월 제시한 조정안에는 “송영숙을 채용일로부터 1년간 무급휴직하며 1년 후 노사가 협의해 근무지를 정하도록 한다. 박문진은 채용 뒤 명예퇴직을 하며 명예퇴직금은 병원 명예퇴직자 관례에 따른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송영숙과 박문진에게는 13년이라는 해고기간 동안 겪었을 생활의 어려움을 고려해 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영남대의료원은 2006년 지부가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3일간 파업을 하자 2007년 지부 간부 10명을 해고했다. 당시 해고자 10명 중 7명은 2010년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복직했지만, 박 지도위원과 송 부지부장은 현재까지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지부는 “영남대의료원이 당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아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박 지도위원과 함께 고공농성을 했던 송 부지부장은 건강악화로 107일 만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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