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마기수가 유서에서 밝힌 부정경마가 실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훈련이 부족하거나 건강이 나빠 경주에 부적절한 말인데도 마주·조교사 지시로 강제로 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공공운수노조는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마사회는 투전판이 돼 버린 경마제도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서울(렛츠런파크 서울)과 부산경남(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제주(렛츠런파크 제주) 지역에서 일하는 마사회 전체 기수 125명 중 75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노동건강·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참여한 기수의 60.3%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조교사나 마주로부터 다리 상태가 좋지 않은 말을 출전시키거나 말을 때리라는 지시를 받거나, 관객 모르게 평보·구보로 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시를 거부했을 때는 말을 탈 기회를 줄이거나, 문제가 있는 말을 배정한다고 털어놨다. 출전 기회가 적으면 출전료·상금 등을 적게 받기 때문에 부당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응답자 48%가 "건강하지 못하다" 혹은 "매우 건강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기수 61.1%가 "건강이 나쁘다"고 답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노조 관계자는 "부산경남 기수들이 스스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지역 기수보다 더 많이 다치고, 건강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라며 "이곳 기수들은 건강 문제로 인한 결근일이 다른 지역 기수보다 많고, 병가기간도 길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마사회가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 이식하고 있는 '비경쟁성 상금은 줄이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하는' 경마정책(선진경마제)이 기수 건강악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마사회에 선진경마제 폐기를 요구했다. 이들은 "경마를 투전판으로 만드는 선진경마제 속에서 기수들은 면허 박탈과 생계 위협, 갑질을 감내하며 말에 오르고 있다"며 "마사회는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통해 다시 문제점이 드러난 선진경마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문중원 기수는 "조교사가 시키는 대로 충성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그저 나가라고만 한다"며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 정말 웃긴 곳이다. 경마장이란 곳은"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유가족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마사회에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고인의 아버지 문군옥씨는 기자회견에서 "마사회의 답변을 받기 전까지 온 가족이 싸늘히 누워 있는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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