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재정부

일본 수출규제에 맞서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 특별연장근로 인가(인가연장근로) 같은 노동 분야 규제완화가 포함됐다. 국회에서는 여권발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완화를 뼈대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국면을 틈타 노동 분야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화학물질 심사단축·노동유연화 업계 요구 반영
여권발 주 52시간 상한제 개정 추진 '기름 붓나'

정부 대책은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에 초점이 모아진다. 정부는 우선 100대 핵심품목 공급안정성을 조기에 확보할 예정이다. 불산·레지스트 등 20대 품목은 1년 이내, 나머지 80대 품목은 5년 이내 수입국 다변화·신증설 신속처리·조기 기술개발 긴급자금 투입을 통해 공급안정성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업계 목소리를 이유로 노동·환경 분야 규제완화를 대거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정부는 “업계가 환경 규정과 근로시간단축으로 투자·생산에서 어려움을 제기했다”며 “조속한 생산과 시설투자가 가능하도록 환경·노동제도 유연화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업계가 화학물질 생산시 등록절차와 연구개발(R&D) 인력 집중투입을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을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건의는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부는 환경·노동 절차를 패스트트랙으로 간소화한다. 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와 기존 사업장 영업허가 변경 신청기간을 75일에서 30일로 단축한다. 국내에서 신규로 개발된 일본 수출규제 대응 물질은 물질정보와 시험계획서를 제출하면 한시적으로 조건부 선제조를 인정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화학물질 공정안전보고서 심사기간은 평균 54일에서 30일로 단축한다.

정부는 특히 재량근로제 활용을 지원하고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연구개발인력 등이 재량근로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재량근로 활용 가이드’를 배포하고 기업이 요청하면 일대일 컨설팅을 할 것”이라며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고 시급한 국산화 등을 위해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당시 고통분담론 폐해 교훈 잊었나”
정부 “소재·부품·장비 산업 대상 한시적 조치”

노동 규제완화 흐름은 여권에서도 확인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은 이원욱 의원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시기를 늦추는 내용의 근기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한다. 같은 당 정책위원회 3정조위원장인 최운열 의원은 고소득 전문직을 주 52시간 상한제에서 제외하는 근기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일본 수출규제로 재계가 노동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시점이다. 여권이 이에 호응하면 광범위한 규제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에 역행하는 조치가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한일관계에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안전·환경·노동 규제완화인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며 “외환위기 당시 고통분담론을 들이밀며 정리해고법·파견법을 통과시켜 비정규직 양산과 영세 자영업자 전환으로 양극화 사회가 됐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른 산업으로 확산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같은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인가연장근로는 일본 수출규제를 예측할 수 없고 개별적으로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가하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특별연장근로와 다르다”고 해명했다. 임 차관은 “정부로서는 주 52시간 상한제 유예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당론도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본 수출규제와 관계없는 노동 규제완화는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소재·부품·장비 산업과 관련한 부분에 적용하는 임시적·한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연윤정·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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