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고용보장 약속 없이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아무것도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현재 티브로드는 고객센터 설치·철거·수리기사를 100% 하청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인수기업이 고용승계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1천명 넘는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실직상태에 놓이게 돼요."

정화목(51)씨가 결의대회에 참석한 이유를 묻자 한숨을 쉬었다. 정씨는 희망연대노조 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조합원이다. 1999년 처음 유선방송업계에 몸담았다. 20년 동안 정씨의 소속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최근 불고 있는 통신대기업의 케이블방송사 인수 바람에 정씨가 느끼는 위기감은 이전과 다르다. 티브로드를 인수하려는 SK텔레콤은 아직 티브로드 협력업체 노동자 고용보장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내놓은 적이 없다. 그가 오후 2시 업무를 마치고 경기도 군포에서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장을 찾은 이유다.

노조는 4일 오후 KT 광화문지사에서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고용보장 없는 인수합병 반대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조 딜라이브지부·LG유플러스한마음지부를 비롯해 8개 지부 조합원 100여명이 참가했다. 노동자들은 이날 정오에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에서 집회를 한 뒤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하고 다시 중구 SK텔레콤 본사로 이동했다. 연차나 반차를 쓰거나 교육시간를 활용해 집회에 참석했다.

노동자들은 "고용보장 없는 인수합병 즉각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블방송업계는 폭풍전야 같은 상황이다. 거대 통신사와 인수합병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각각 CJ헬로와 티브로드 인수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KT도 딜라이브 인수전에 뛰어들 전망이다. 케이블방송 노동자들은 통신사가 케이블방송을 인수한 뒤 IPTV로 가입자를 빼내고 중복업무를 담당하는 케이블방송 설치·수리·철거기사를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피합병회사 노동자뿐만 아니라 합병회사 정규직 노동자도 구조조정을 염려했다. 연차를 쓰고 결의대회에 참석했다는 LG유플러스 노동자 김진수(27·가명)씨는 "지난해 9월 LG유플러스 정직원이 됐다"고 했다. 그는 "2016년 구조조정 당시 느꼈던 위기감을 잊지 못한다"며 "기업은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자원쯤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용문 노조 공동위원장은 "인수합병이 확정된 뒤 고용보장 방안을 논하겠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고용보장에 관한 논의 없이 인수합병이 되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