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전망이 어둡다. 정부는 아직도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포함한 관련법 개정안을 처리한 후 ILO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를 비롯해 선입법을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우리나라는 '입법 완성기'이기 때문에 협약의 선 비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ILO 회원국에 가입한 후 비준한 29개 협약 대부분이 선 비준 방식으로 처리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실에서 연 33주년 창립기념 토론회에서다.

윤효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는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 선 입법이 사실상 존재했었냐"고 반문한 뒤 "법령의 완성도 측면에서 선 입법이든 후 입법이든 간에 의미 있는 입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입법의 실질적 완성도, 다시 말해 국내 법·제도의 실질적 충족률 측면에서 봤을 때 선 입법을 거쳐 비준한 ILO 협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윤 컨설턴트는 "정부 관료들은 선 입법 없이 선 비준한 근거로 법·제도 충족을 주장하는데 그건 관료들만의 주장이고, 입법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국회에서 검증받은 바 없다"며 "관료들이 '국내 법·제도가 협약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선 입법이냐 선 비준이냐 향방이 결정돼 왔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이 2001년 12월 ILO 135호 '노동자대표 보호와 편의 제공' 협약을 비준했는데도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비준한 4개 협약도 기존에 비준된 ILO 협약의 '관행'과 '선례'를 따라 곧바로 비준으로 가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토론자로 나온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어떻게 100% 완벽하게 입법 충족률에 맞춰 협약을 비준하겠냐"며 "다만 그동안 수차례 협약과 상치된다고 지적된 사안(법·제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개정하겠다는 설명 없이는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선 입법 후 비준으로 정리해 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주 서울시 노동협력관은 "정부가 ILO 협약을 비준하고 국회에 동의안을 던져서 갈등의 범위를 키워 보는 게 필요하다"며 "비준을 하냐 마냐를 떠나 입법부 차원에서 다양한 입법적 논의를 진행하면 사회적으로 노동권 인식의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