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 참여하는 노사정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경사노위 첫 합의다. 노동자 과로를 막기 위해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했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노사정과 전문가가 생각하는 탄력근로제 합의 의미를 들었다.
 

▲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등가가치가 없는 의제를 합의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건강권 확보가 교환할 수 있는 등가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기간을 확대하지 않으면 건강권 확보 같은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도 됐다. 도입 요건을 완화하려는 사용자 핵심요구는 1주 단위로 자기들이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로 들어갔다. 사용자는 노동시간 사전확정을 일단위에서 주단위로 완화할 경우 2주 전에 일별 노동시간을 통보만 하면 된다. 과도한 재량권이 사용자에게 부여된다. 재난대응과 같이 긴박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함이라면 특별연장근로제도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탄력근로제 논의에서 나올 주장이 아니었는데도 단위기간 연장을 요구하면서 이런 주장이 등장했다.

노사 대표가 탄력근로제 시행에 따른 임금보전 방안에 서면합의하면 사용자는 보전수당 지급방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근로자 과반수대표와 합의해야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도 않아서 논란 여지가 크다.

사회적 대화에 임하는 정부 태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단위기간 확대 필요성이 높지 않은데도 정부는 과도하게 다뤘다. 또다시 정해진 해답을 두고 노동을 설득하는 양상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과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시절의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경사노위 합의라는 도구를 노동존중 사회라는 정책방향을 돌리는 데 사용해 버렸다.

과도하게 사용자 편향적인 합의인데도 경사노위 본위원회나 국회에서 이번 합의를 뒤집지는 않을 것이다. 합의 중 부작용이 뚜렷이 예상되는 부분을 반드시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우려가 된다.
 

▲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2·19 합의, 입법 과정서 미끄러져선 안 된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지난해 10월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발표가 있었다. 이어 11월5일에는 여야정협의체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하면서 기정사실화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월 국회 처리를 천명하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넘겼다.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관련 합의가 되든, 안 되든 국회는 밀어붙일 상황이다. 논의를 거부하고 반대만 할 것인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보완할 것인가. 기로에 섰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부작용을 줄이기로 했다. 사회적 대화가 열리면 한국노총이 당당하게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결과에도 반영시킬 수 있지만 국회로 넘어가는 순간 노동계 입장보다는 경제논리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해 민주노총의 막판 반대로 당사자 간 합의가 불발된 상태로 국회로 넘어간 최저임금법이 어떻게 개악됐는지 잘 알고 있다. 국회에서 강행처리한 개악안은 노사가 합의하려던 것보다 훨씬 험악한 내용이다. 매월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물론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경사노위에 참여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노총은 탄력근로제 협상에서 도입요건 강화와 건강권 보호, 임금보전에 집중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2·19 합의에서 한국노총은 △노사합의로 6개월까지 확대 △노동일간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 △보전수당이나 할증임금으로 임금보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도입시기와 연동해 단계별 적용 등에 합의했다. 협상과 타협의 산물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최악안을 막기 위한 협상 결과인 만큼 국회 입법 과정에서 보완하되, 더 이상 미끄러져선 안 된다.
 

▲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

2주 단위로 바뀌는 불규칙·장시간·저임금 노동의 상시화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

이번 탄력근로제 합의의 포장 뒤에 가려진 ‘악마의 디테일’을 살펴보면 노동자는 받은 것이 없고 사용자에만 퍼준 합의라 할 만하다. 특히 합의문에 있는 ‘불가피한 경우’ ‘다만’ ‘예외로 한다’와 같은 표현의 앞뒤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첫째,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했다. 둘째,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도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지킬 필요가 없다.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노조 없는 사업장은 사용자 일방으로 지킬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또한 노동부 만성과로 기준인 연속 12주간 평균 60시간과 연속 4주간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문제는 합의문에 없다. 6개월 단위기간 연장시 최대 10개월 동안 연속 64시간이 가능한 것은 알기나 할까? 셋째, 도입요건을 ‘일’이 아닌 ‘주’단위로 변경하게 하고, 또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그마저 ‘합의’로 정한 노동시간을 ‘협의’로 변경할 수 있게 열어 놓았다. 앞의 노사‘합의’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마지막에 ‘협의’만 남는다. ‘2주 단위로 수시로 변경 가능’한 상시적 탄력근로제, 장시간 불규칙 노동체제를 가능하게 한다. 넷째, 임금보전 신고의무와 과태료 조항도 ‘다만’과 ‘예외로 한다’는 조항으로 의무를 피할 수 있고, 신고 사항도 구체적인 임금보전 기준은 없고 사용자 일방이 신고하면 그만이고, 형사처벌 조항도 없다. 역시나 중소·영세 사업장과 노조 없는 사업장은 무방비 상태고, 임금보전 수준을 가지고 노사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다섯째, 이번 합의는 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보다 기간이 확대하면서 규제 강화가 아니라 더 유연하게 했으니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 활용을 권장하는 꼴이다. ‘유연성 확대에 비례한 법적 규제 강화’라는 근로기준법의 최소한의 기본원칙에도 역행하는 ‘NO기준법’ 만들기의 서막이다. 소위 노동존중 사회를 자처하는 정부 ‘첫 번째 사회적 합의’가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라고 자랑스럽게 외쳐 대는 현실에 씁쓸함과 분노를 넘어 차라리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근로시간제도 다양성과 유연성 위한 사회적 논의 지속되길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지난 19일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 두 달여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노사 모두 대화와 양보를 통해 만들어 낸 결과다. 이번 합의는 산적한 노동 현안을 사회적 대화로 풀어 가는 출발점이 됐다. 근로자 건강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임금 저하 방지에 대한 고려가 있었고, 탄력근로제의 운용요건 개선으로 ‘근로시간 유연화’의 첫발을 내디딘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6개월로 확대됨에 따라 기업들은 업무량 증가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근무스케줄을 주단위로 설정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노사 협의로 근무스케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해 제도활용 폭도 넓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근로자와 기업 모두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사정이 근로시간단축에 따른 산업현장 고충에 공감하고 어렵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낸 만큼 국회에서 합의 내용을 반영해 조속한 입법이 추진돼야 한다. 아울러 탄력근로제만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 말하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근로자와 기업의 니즈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다른 제도들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장시간 근로 해소의 기반이 마련된 만큼 근로시간제도의 다양성과 유연성 측면에서의 사회적 논의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 김경선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

제도개선 완료될 때까지 노사정 공동노력 필요
김경선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

이번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에 대한 합의는 문재인 정부 최초의 노사정 합의다. 노사 간 의견이 대립하는 쟁점 사안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담은 합의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 크다. 특히 단위기간 확대와 운영요건 완화라는 재계의 요구와 단위기간 확대에 따라 우려되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조치, 오남용 방지를 위한 임금보전 방안을 강구해 달라는 노동계 요구를 균형 있게 다루면서 노사 모두 책임감을 갖고 일부 양보하면서 얻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값진 합의로 볼 수 있다.

건강권 보호와 관련해 유럽에서 활용되는 11시간 연속휴식 의무화가 규정돼 실질적으로 일별·주별(주 12시간) 근로시간 상한이 새롭게 도입됐다는 점에서 근로시간 제도에 있어 진일보한 안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노사정이 함께 과로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합의사항도 포함돼 현재 경사노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과로사 방지대책이 앞으로 더욱 구체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향후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개선 합의사항이 입법화돼 제도개선이 완료될 때까지 노사정의 지속적인 공동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합의정신에 맞게 탄력적 근로시간제 제도개선이 완료되고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도입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상담지원과 함께 필요한 경우 사업장 지도·감독을 충실히 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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