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업안전에 관한 한 '계약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계약 당사자 간의 권리와 의무 차원에서 벗어나 산업재해 위험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주체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옳다."

<매일노동뉴스>가 30일 입수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위원장 배규식)의 최종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발족한 조사위원회는 이날 9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조선업 재해의 근본적 원인 해결을 위해 다단계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위는 조선업 중대재해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재하도급'을 지목했다.

실질 고용계약과 인사노무관리 분리

조사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4명의 목숨을 앗아 간 STX조선해양 폭발사고는 거미줄같이 얽힌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모두 B코팅산업 소속이었다. 원청인 STX조선해양에서 탱크 내부 특수도장 작업을 도급받은 A기업이 B코팅산업으로 재하도급을 줬다.

조아무개 B코팅산업 대표는 A기업 물량팀장이었다. 숨진 노동자의 4대 보험은 A기업이 가입했지만 근로계약서는 B코팅산업이 작성했다. 조사위는 "실질적인 고용계약과 인사노무관리(4대보험)가 분리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같은해 5월1일 6명이 숨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 현장에서도 '위험의 외주화'를 확인했다. 당시 사고가 난 마틴링거 모듈에 1천623명이 일하고 있었다. 원청인 삼성중공업 소속 정규직은 9.8%(159명)뿐이고 나머지 90.2%(1천464명)가 하청노동자(15개 업체)였다. 하청노동자들은 또다시 여러 개 재하도급 물량팀(재하도급)에 소속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량팀 노동자는 근속기간이 짧은 특성을 보인다. 하청노동자 1천464명 중 근속이 6개월 미만인 노동자가 전체의 53.6%, 그중에서도 1개월 미만이 13.5%를 차지했다.

"불황인 지금이 재하도급 제한 적기"

조사위는 "사고 피해가 컸던 이유는 원청이 좁은 공간에 많은 수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동시에 투입시켜 작업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특히 "(최근 조선업 불황으로) 재하도급 활용규모가 최저 수준이므로 재하도급을 엄격히 제한할 수 있는 적기"라며 "건설업 재하도급 금지 정책을 참고해 빠른 시일에 정책을 만들라"고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다만 노무도급이 아닌 물량도급 형태의 재하도급은 전문업체를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아울러 조사위는 "무리한 공정 진행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원청의 과도한 일방적인 생산시수와 기성금 감축을 규제하고 △기업에서 표준 공사기간 준수 △안전작업을 고려한 안전설계 체계 마련 △동일 공간에서 원·하청 노동자가 섞여 작업할 경우 원청에 작업순서 등에 대한 조정의무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감독과 보호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선업 안전관리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사위는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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