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고 박선욱 간호사가 서울아산병원에서 과중한 업무와 태움 등 스트레스로 사망한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서울아산병원은 신입 간호사를 뽑는 면접장에서 고 박선욱 간호사를 언급하며 지원자들에게 고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또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바닥이 병균 등으로 위험한데도 환자들의 민원이 있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에게 수면양말을 신게 했다고 한다.

요즘 공공기관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라디오와 TV를 통해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위해 40여 년 동안 봉사한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거릿 간호사를 소개하면서 나눔과 배려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나눔과 배려 정신으로 헌신하는 간호사들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을 계기로 간호사들 사이에서 오랫 동안 만연한 직장 괴롭힘인 ‘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병원 ‘직장 괴롭힘’이 심각한 수준인 것도 알게 됐다. 오죽하면 지난달 18일 발표된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합동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 추진배경이 "의료 등 사회 전반에 직장 괴롭힘 만연"이다. 정부도 의료계 태움 등 직장 괴롭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근절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지만 직장 괴롭힘 근절을 위한 관계부처의 노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직장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본회의를 통과해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직장 괴롭힘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11월 "직장에서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번에 발표된 관계부처 합동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에는 직장 괴롭힘 유형으로, 신체·신분·업무·언어적 괴롭힘 등 다양한 괴롭힘이 열거됐다. 고용불안 조성과 비하적·굴욕적인 언어 사용, 근거 없는 소문, 회식 강요 등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도 직장 괴롭힘 유형에 포함됐다.

이번에 문제 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지원자들에 대한 소위 '면접 갑질'이나 간호사들에 대한 '수면양말 사건'도 간호사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로 직장 괴롭힘에 해당한다. 직장 괴롭힘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기에 일일이 녹화나 녹취를 하지 않는 한 밝혀내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형사법상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다.

직장 괴롭힘이 심각한 이유는 위와 같이 처벌이 어렵고 잘 드러나지 않음에도 피해자에게 정신적 긴장과 압박감을 줘서 한 사람의 자존감을 급격하게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매일 마주해야 하는 직장에서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높은 자살률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는 국민과 노동자의 평온하고 인간다움 삶을 위해 직장 괴롭힘 예방과 근절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직장 괴롭힘 근절대책이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라면, 정부는 특별근로감독이나 임시건강진단명령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정부가 섬김과 배려를 위해 간호사들을 공익광고에 등장시키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간호사들은 섬김과 배려가 부족한 현실에서 누군가의 갑질에 힘들어하고 있다. 간호사도 사람이고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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