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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아름다워 슬픈 섬, 소록도]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한센병 환자 배제·폭력 역사를 따라가다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주최 인권기행
▲ 생을 마감한 한센병 환자들의 유골을 안치한 만령당 앞.<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이달 2일 비정규·문화 활동가들이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찾았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 주최한 인권기행이었다.

일제는 나병·문둥병·천형병·악창 등으로 불렸던 한센병 환자들을 1916년부터 소록도에 격리해 수용했다. '근대화한 선진사회'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한센병 환자나 부랑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없애 버리는 정책을 썼다. 하지만 광복 후에도 한센병 환자 강제격리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한센병 환자들로서는 '매질을 하는 자'가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번 기행은 한 세기 가까이 외딴섬에 갇혀 일생을 '문둥이'로 낙인찍힌 채 모진 탄압과 차별·배제 속에 살아온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마주하고, 노동현장뿐 아니라 일상에서 더 많은 약자들과 연대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조영선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가 길잡이를 맡았다. 조 변호사는 한센인 인권침해 공익소송을 맡았던 한센인권변호인단 간사다. 소송을 통해 일본과 한국 정부의 부당한 한센인 격리·말살정책으로 고통받은 한센인에 대한 정부 배상과 명예회복을 이끌어 냈다. 기행단에는 기아자동차·철도·학교비정규 노동자와 인권·문화활동가 등 23명이 참여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들과 동행했다.

무독지대·유독지대 가른 소록대교

인권기행이었지만 늦가을 단풍을 즐기고 싶은 행락객의 심정으로 따라나선 게 사실이다. 단풍으로 물든 차창 밖 풍경을 즐기느라 5시간을 내달린 소록도행이 지겹지는 않았다. 소록도에 닿기 전 녹동항과 섬을 잇는 소록대교 위에서 던진 조 변호사의 한마디에 행락객 같던 들뜬 마음이 차분해졌다.

"저 앞에 섬 보이죠? 다리 왼편이 일명 무독지대로 불렸던 관사지대, 다리 오른편이 유독지대로 불렸던 곳이에요. 주민들이 사는 곳이죠."

국립소록도병원과 직원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무독(無毒)지대로,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지역을 유독(有毒)지대로 불렀다는 얘기다. 전염의 위험을 과장하고 격리·배제를 합리화하는 용어다.

다리는 무독지대와 유독지대를 정확히 가르며 섬을 관통했다. 2009년 3월 소록대교를 놓으면서 섬을 외부에 개방했다고 한다. 다리가 놓인 위치부터 은연중 한센인들을 분리해 놓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소록대교를 건너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으로 가는 도롯가는 소나무들로 빽빽했다. 한때 눈물과 한숨, 탄식이 가득했을 장소, 수탄장(愁嘆場)이다. 전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한센병 환자 부모와 환자가 아닌 자식을 생이별시켰다. 아이들은 관사지대 보육소에 격리했다.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 부모와 자식이 도로 양 옆으로 갈라선 채 눈으로 만나야 했다.

▲ 조영선 변호사가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에서 기행단에게 설명하고 있다.<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수탄장을 지나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을 둘러봤다. 한센병 치료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박물관을 나와 한센병 환자들에게 가해진 탄압의 역사를 오롯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소록도 중앙공원 들머리에는 1935년 지어진 감금실이 있다.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설치된 감금실은 붉은 벽돌로 담을 쌓아 만든 H 형태의 건물이다. 15칸 방에 딸린 철창과 방 한쪽에 마련된 변기가 마치 형무소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둑해질 무렵 찾은 감금실은 을씨년스러웠다. 기행단은 선뜻 방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개만 쭉 뺐다.

감금실은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거나 도망쳤던 환자들을 잡아 가둔 곳이다. 이곳에 끌려온 환자들은 맞아 죽거나 불구가 됐다. 환자들은 감금실을 나가면 옆 건물 검시실 단종대 위에서 단종수술(정관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예외는 없었다. 감금실 벽에는 스물다섯 나이에 강제로 단종수술을 받은 '이동'이라는 환자가 쓴 시가 남아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후략)"

일본은 한센병 환자들의 평생격리를 위해 '우생학'을 빌미로 단종과 낙태를 자행했다. 일본은 남녀를 따로 살게 했다가 1936년부터 부부동거를 허용했다. 동거를 하려면 남자는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다. 단종수술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절차였다. 일명 '가정수술'로 불렸다.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돼야만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아이러니라니. 임신한 여성은 강제낙태를 당했다. 해방 후에도 인권유린은 사라지지 않았다.

천부적 권리를 강제로 박탈당한 채 살던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한센인권변호인단이 단종·낙태 피해자들을 모아 2011년부터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했다. 2017년 2월에야 단종수술 피해자에게 3천만원, 낙태수술 피해자에게 4천만원씩 배상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 검시실 모습. 한센병 환자가 사망하면 시신은 무조건 이곳에서 해부됐다.<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태어나서 세 번 죽는 한센병 환자들

감금실 옆에는 검시실이 있다. 한센병 환자가 죽으면 검시실로 옮겨진다. 사망 원인을 알아낸다는 명목으로, 사망자들은 해부를 당했다. "검시대에 사선으로 깊이 파인 홈을 통해 시신의 피를 흘려보낸다"는 조 변호사의 설명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해부를 마친 시신은 간단한 장례절차를 거친 뒤 화장을 했다. 한센병 환자들은 태어나 세 번 죽었다. 한센병이 발병했을 때 한 번, 해부될 때 두 번, 그리고 화장터에서 소각될 때 세 번. 해부 자체가 귀했던 시절, 한센병 환자들을 숱하게 해부했던 탓일까. 옛 소록도갱생원 의사들이 수술실력 하나는 끝내 준다는 '설'이 떠돌았다.

검시대 옆 빈 진열장에는 1995년까지만 해도 포르말린에 넣어 보관된 한센병 환자들의 장기와 머리, 낙태 태아 등이 전시돼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731부대(2차 세계대전 당시 치명적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일본군) 같다"고 말했다.

묵직한 감정을 추스르고 검시실을 나와 중앙공원으로 들어섰다. "우와." "예쁘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황금편백·향나무·후박나무·삼나무 등 100여종이 넘는 관상수와 기기묘묘한 모양의 관상석으로 꾸며진 중앙공원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은 "손발 문드러진 환자들이 이 공원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겠냐"며 씁쓸해했다.

옛 소록도갱생원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의 명령으로 1939년 12월부터 한센병 환자들이 공원 조성에 강제로 동원됐다. 한센병 환자들은 4개월간 산을 깎고, 집채만 한 암석을 공원 장식용으로 옮겼다.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를 새긴 커다란 바위는 옮겨도 죽고, 옮기지 않아도 죽는다고 해서 환자들 사이에서 '죽어도 놓고 바위'로 불렸다고 한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자살을 하거나 바다를 헤엄쳐 도망가다 죽는 이도 많았다. 도망가다 잡힌 사람은 감금실을 거쳐 검시실에 끌려가 단종대 위에 올라갔다.

중앙공원까지 둘러보고 나오니 해가 저물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다. 도시였다면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졌을 오후 6시30분. 소록도는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김영애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은 "소록도는 너무 아름다워서 왠지 더 슬픈 것 같다"고 말했다.

▲ ‘오마도 간척 한센인 추모공원’에서 내려다본 풍경.<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한센병 환자들 3년 매달린 오마도 간척사업 물거품

이튿날 기행단은 '오마도 간척 한센인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오마도 간척사업은 1962년 군의관 출신인 조창원 소록도병원장이 한센병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계획한 사업이다. 고흥군 도양읍의 다섯 섬을 잇는 방조제를 만들고, 바다를 메워 조성된 300여만평의 농지 분양권을 한센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소록도가 아닌 자신만의 땅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 하나 갖고 한센병 환자 2천500여명이 3년간 간척사업에 매달렸다. 그런데 70% 정도 완공됐을 때 인근 마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사업권은 전라남도로 이관됐다. 한센병 환자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피땀 흘려 만든 간척지를 내주고 쫓겨나듯 떠난 한센병 환자들의 심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추모공원에 세워진 벽에는 '국립소록도병원 오천원생 일동'의 애곡(哀哭)이 적혀 있다.

"오호통재라! 오천 원생은 곡하노라! 우리의 비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오마도 간척공사를 1962년 7월10일에 착공하였으나, 세계적인 대기만극으로 1964년 5월25일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기에 여기에 그 유래를 세계 만천하에 고하노라."

"이곳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이 될 수 있었는데…."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이 바다 옆 농지가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안타까워했다.

소록도 개발 여론에 '소록도 지키자' 소모임 생겨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거대한 수용소이자 도망치고 싶은 섬이지만, 소록도가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 때문에 몇년 전부터 섬을 둘러싼 개발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록도 주민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소록도를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소록도 개발론을 경계하며 역사의 발자취로 소록도를 지키자는 자생적 움직임도 있다.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인 명인씨도 소록도 보존을 주장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노동교육을 연구하다 7년 전 서울생활을 접고 전남 고흥으로 내려온 그는 올 여름 몇몇 지역사람들과 함께 '소록도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명인씨는 "모임을 만들고 소록도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소록도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조영선 변호사는 "소록도 개발이냐, 보존이냐 문제는 오래된 이슈"라며 "소록도 주민들의 후손들이 녹동지역에 많이 살다 보니 소록도 개발을 '고토 회복'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수용했던 장소를 대단히 원칙적으로 보존하고 있다"며 "강제격리의 역사적 맥락을 담은 현장을 존치시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유흥희 1천100만 비정규직 이제그만 집행위원장은 "소록도 주민들의 삶에 새겨진 아픔을 기록하고 마주 바라봐 주는 활동이 더 많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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