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국내 노동계가 추가적인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유럽의 ‘세대협약’(Generation Pacts)이나 ‘여가선택(Leisure Option)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노동자의 자기결정에 기반을 둔 여러 형태의 유연근무제도 과제로 제시됐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서울 세계대회를 맞아 특별세션을 공동으로 열었다. 주제는 '성공적인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노조의 대응'이다. 유럽·영국 사례를 통해 국내 노동계가 좇아야 할 과제를 찾는 자리였다.

◇유럽에서는 노동자에게 선택권='유럽의 근로시간과 임금'을 주제로 발제한 레이 델슨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교수(경제학)는 네덜란드 사회에서 보편적인 세대협약을 소개했다. 세대협약은 연령에 기반을 둔 피고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맞춤형 협약을 뜻한다. 고령의 노동자(57세 이상)가 건강하게 오래 일을 하며, 청년층(35세 미만)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을 동시에 추구한다.

네덜란드 지방정부는 2013년부터 세대협약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부문 노사는 이를 차용해 올해부터 2021년까지 적용되는 세대협약을 체결했다.

적용 대상은 올해 기준 퇴직이 8년가량 남은 60세 이상 노동자들이다. 해당 협약은 이들에게 전일제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 16시간을 최소 의무 노동시간으로 부여한다. 그런 뒤 △50% 노동과 75% 임금 △60% 노동과 80% 임금 △80% 노동과 90% 임금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한다.

레이 델슨 교수는 “세대협약은 고령노동자들의 단계적 은퇴를 돕고 지식과 전문성이 조직 내에 오래 유지되며 정리해고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고령노동자에 대한 임금절감액이 제한적으로 청년층을 위한 추가 일자리수도 확실치 않은 만큼 사회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에게 ‘돈’이냐 ‘시간’이냐를 선택하도록 하는 나라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 전자산업 노사는 2013년 여가 선택(Leisure Option)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매년 갱신한다. 예컨대 어떤 노동자가 3% 인상된 임금을 포기한다면 연간 노동시간이 60시간 줄어든다. 정년 때까지 총 네 번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주 28시간 일하는 단시간 근무를 새로운 정규직 모델로 삼기로 했다. 레이 델슨 교수는 “주 28시간제를 선택한 노동자들에게는 2년 후 전일제(주 35시간)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며 “오스트리아의 여가 선택과 유사한 제도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필요 충족 방향으로 유연근무제 확산해야"=영국 노동계는 유연근무제를 노동자와 회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정희정 영국 켄트대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영국은 2003년 6세 미만 아동을 키우는 노동자에게 유연근무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2014년 아동가정법 개정으로 지금은 모든 노동자가 대상이다. 시간제 근무·압축 근무·재택 근무·유연시간 근무·학기제 한정(연간 38주) 근무 등을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한국의 경우 출산율과 유자녀 근로자의 요구 등을 고려해 유연근무제의 업무 효용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불안정하거나 나쁜 일자리에 종사하는 젊은층을 위해 유연근무제를 통한 일자리 나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상황과 노동계가 추진하는 과제를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남아 있는 5개의 노동시간 특례업종 전면폐지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으로 노동시간 사각지대 해소가 향후 행정적·제도적 개선 과제"라며 "노동시간단축을 상수로 놓고 '노동시간-임금-생산성-일자리'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부의 획기적인 재정지원 대책과 함께 노조의 공세적인 추진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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