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 화난 표정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땡볕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효자로 왼쪽 차선에 늘어선 노동자 앞에는 4개의 얼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집회 장소와 차가 오가는 도로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구분 지었다. 도로 너머에는 경복궁 북서편 외곽을 이루는 돌담과 가로수가 늘어섰다. 가로수 사이엔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에는 “문재인표 노동존중 끝났다”고 쓰여 있었다.

민주노총이 이날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문재인 정부 규탄 수도권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동자 700여명이 참가했다. 같은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등이 개최한 지역별 결의대회가 전국 동시다발로 열렸다.

◇"정권교체와 새로운 세상은 다르다"=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달 1일 청와대 앞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하고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개악'으로 규정하고 폐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결의대회에서 “새로운 정부가 노동존중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표한 것에 모두 주목했지만 1년이 지났는데도 노동존중은 간데없고 공약은 사라지고 후퇴하고 있다”며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전 세계 노동계 대표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107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해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조연설을 했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 면담에서도 같은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라이더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 관계자를 만날 때 문제를 언급하겠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내일은 6월 항쟁 31주년이 되는 날로 우리는 수백만 민중의 투쟁이 기득권을 후퇴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것을 안다”며 “1천700만명이 든 촛불로 정권을 교체한 것이 새로운 세상을 오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모이자 6·30, 가자 청와대로”라고 외쳤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를 기점으로 청와대 앞 농성을 마무리했다. 노동현장을 찾아 대규모 결의대회와 하반기 파업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30일 최저임금법 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조합원 10만명 조직이 목표다.

◇파업 준비하는 산별노조들=산하 조직들은 파업을 예고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최근 대우조선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한 것을 언급하며 “이제 갈림길은 사라졌고 한길만 존재한다”며 “뒤로 후퇴할 것이냐 앞으로 전진할 것이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비정규직 철폐와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당찬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7월에 파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로 최저임금을 후퇴시키는 꼼수를 막기 위해 당장 현장의 투쟁이 필요하다”며 “공공운수노조는 7·8·9월 파상 파업과 10월 시기집중 파업으로 노동정책 후퇴를 막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징 의식이 이어졌다. 4명의 노동자가 순서대로 무대차량 앞에 놓인 네 개의 얼음기둥으로 다가섰다. 각각의 얼음은 ‘최저임금 삭감법’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말로만 노동존중’ ‘노동 적폐’라고 적힌 종이를 품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어른 팔뚝만 한 망치로 얼음기둥을 단번에 깨뜨렸다.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으로 행진해 올해로 27회째를 맞은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함께했다. 노동자들은 먼저 간 노동열사들의 위패를 들고 걸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