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재해 사고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노동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돕겠다며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현장에 안착되기까지 적잖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고용노동청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 공전=2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이달에만 벌써 5명이 산재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 매뉴얼에 따라 심리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은 아직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붕괴·협착·절단 등 충격적인 재해를 경험 또는 목격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대구·경북·부산·경기(의정부) 지역에서 9~10월 시범운영하던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이달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발표 후 이날 현재 발생한 산재사망 사고는 총 4건이다.

이달 9일 전주 완산구 한 건물에서 외벽 보수공사를 하던 중 고소작업차가 전도돼 노동자 2명이 추락사했고, 같은날 제주시 한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다 19일 사망했다. 16일에는 광주 남구에서 가로청소를 하던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수거차량에 치여 숨졌고, 24일에는 경기도 시흥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체형 거푸집(갱폼)이 낙하하면서 카자흐스탄 출신 외국인노동자 1명이 추락사했다.

산재 트라우마 프로그램 매뉴얼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관할 지방노동청이 재해원인 조사 과정에서 트라우마 관리 필요성을 확인해 1주일 안에 안전보건공단을 통해 해당 사업장에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권고·지도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 현재 안전보건공단에 산재 사업장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시행하라는 노동청의 지시가 내려간 사업장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제주 현장실습생이 일했던 사업장이고, 다른 한 곳은 광주 환경미화원이 근무했던 사업장이다.

광주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관련 해당 업체 다른 실습 참여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 계획만 세운 상태"라며 "학생들이 원하지 않거나 교육청에서 상담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고 말했다.

광주노동청은 또 광주 미화원 사망사고 2주 만인 이날에야 청소 용역업체 환경미화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하라고 안전보건공단에 지시했다. 광주지역 노동계 관계자는 "사고 후 미화원들 사이에서 불안해하거나 '다시는 미화원으로 태어나지 말자'는 말들이 오가는 등 뒤숭숭했다"며 "특히 사고를 낸 운전자의 경우 심리적 충격이 심각할 텐데 사실상 2주 이상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별로 역량 차이, 정착에 시간 필요"=아예 심리상담 대상이 아니라며 배제된 산재사고도 있다. 전주 고소작업차 전도사건이 그렇다. 노동부는 목격자가 노동자가 아닌 지입차주(사장)라는 이유로 심리상담 대상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광주노동청 전주지청 관계자는 "사고 당시 주변에 다른 노동자들은 없었고, 고소작업차 지입차주가 현장을 목격했다"며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은 산재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입차주에게 심리상담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갱폼 추락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 관계자는 "처음 시행되는 제도라 프로그램 시행 대상 사업장인지 여부는 매뉴얼을 보고 다시 한 번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각 노동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각 지역마다 상담 역량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심리 상담 역량이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에 따라 대응 정도에 차이가 난다"며 "현재는 이슈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고, 사업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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