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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으로 은폐된 광주 D전자 공장 집단 피부질환 산재실링재 접촉 노동자들 가려움·발진 잇따라 … 법 허점 탓에 보고의무 없고 산재통계 누락

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광주광역시 소재 D전자 공장에서 최근 1년 동안 특정 화학물질을 접촉한 노동자 14명이 집단 피부질환을 앓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 보고로 발병사실을 알아챈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올해 4월 현장조사를 해서 작업공정은 개선됐지만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발생 보고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산재통계에서도 제외됐다. 산재가 합법적으로 은폐된 것이다.

실링재 접촉 노동자들 집단 피부병

25일 노동부와 공단에 따르면 광주 광산구 D전자 냉장고 조립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 14명이 실링재(접착제)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돼 손등과 손가락·손목에 건조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질환을 앓았다. 지난해 7월부터 심한 가려움 증세를 보인 노동자도 있었는데, 모두 개인 질병인 줄 알고 개별적으로 피부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안전교육 시간에 노동자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은 적이 있거나 겪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회사는 내화학장갑을 지급하는 등 기본조치를 했다. 두 달 뒤 증상이 심해진 한 노동자가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상담을 요청했고, 센터가 공단 광주본부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면서 3월31일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사업장을 합동조사한 광주지방고용노동청과 공단 광주본부·센터는 냉장고 냉매제를 넣은 배관을 연결부품(lock ring)을 사용해 물리적으로 압착하는 공정에서 실링재로 사용하는 'LOKPREP 61 AL'이 피부질환을 유발한 사실을 확인했다. 강철이나 비철금속을 연결할 때 사용되는 해당 물질은 전자제품 생산공장에서 많이 사용된다.

광주노동청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부품조립을 하다 실링재를 바른 부위에 손이 닿으면서 묻게 된 것"이라며 "특별하게 위험한 건 아니지만 피부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물질이 세 가지 정도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D전자 관계자는 "원래 작업환경측정 대상이나 특수건강검진 대상 물질이 아니다"며 "4월에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성평가를 했는데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고 해명했다.

광주노동청 지시대로 회사는 실링재를 바르는 락링공정 전에 조립작업을 하도록 공정순서를 변경하고, 개인보호구 장비를 1회용으로 바꿔 지급하는 후속조치를 취했다. 지난달에는 라인에서 일하는 85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했다.

작업환경 개선되면 끝? 관리 사각지대 여전

작업환경은 개선됐지만 관리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화학물질로 인해 직업성 질환자가 14명이나 발생했는데도 노동부에 산재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법상 허점은 그대로다.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지 않으면 작업장 문제를 외부에서 알 길이 없다. 사업주는 3일 이상 휴업한 노동자가 없다는 이유로 산재 발생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재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은 경우에 산재가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노동부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산재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

D전자 노동자 14명 모두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중 2명은 피부가 변색될 정도로 가려움 증세가 심각했지만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노조가 회사에 공상처리를 요구했을 뿐이다. D전자노조 관계자는 "완치되거나 증세가 심각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냥 병원치료만 받고 말겠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D전자 관계자는 "(피부질환이 생긴 노동자들을) 면담했는데, 산재라고 여기지 않더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부담감을 느껴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정황도 있다. 광주지역 노동계 관계자는 "산재를 신청하면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정서가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올해 3월 처음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피부질환 관련 상담을 요청한 노동자도 센터에 "상담사실을 비밀로 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노동청 관계자는 "일하다 질병이 발생했기 때문에 산재는 산재"라면서도 "3일 이상 휴업자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가 산재조사표를 보고할 의무는 없다"고 덧붙였다. 부실한 산업안전보건법이 결과적으로 사업주가 합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된 셈이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요구했다. 조 실장은 "산재발생 보고 대상을 '사망 또는 3일 이상 휴업'으로 제한하지 말고, 집단적으로 직업병자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가 무조건 신고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보고의무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할 때 사업주 눈치를 보지 않게 하려면, 본인 신청과 무관하게 병원측이 작업하다 다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한 뒤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도록 병원 신고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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