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열린 재벌총수 구속 촉구 집회에서 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법원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연속흐름 방식의 자동차 생산 직접공정뿐만 아니라 포장업무·출고업무 같은 간접공정에 사내하청을 사용하는 것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자동차를 비롯한 완성품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제조업 생산공정 전반에 사내하청 사용을 확대하는 경영방식이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사용은 '불법파견'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0일 현대·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두 건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시험용 차량을 생산하는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도급계약이 불법파견계약이라는 2심 판결도 같은날 나왔다.

서울고법 제1민사부(부장판사 김상환)와 제2민사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이날 각각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159명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49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옛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는 원청 정규직으로 간주하고, 2007년 7월 개정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회사가 직접고용 의사를 표시하라고 주문했다. 2007년 7월 시행된 파견법은 2년 이상 고용된 파견노동자 고용의무를 사용자에게 부여한다. 그 전에는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를 적용했다.

서울고법은 이날 현대·기아차가 사내협력업체와 체결한 업무위탁계약이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현대·기아차가 하청노동자들을 지휘·명령하는 실제 고용주고, 협력업체는 인력만 보낸 파견사업주라는 것이다. 제조업 파견은 불법이니까 현대·기아차가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취지의 판결이다.

특히 서울고법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직접공정뿐만 아니라 포장이나 출고업무 같은 간접공정도 불법파견 범주에 넣었다. 대법원은 2010년(근로자지위확인 소송)과 2012년(부당해고 재심판정취소 소송) 최병승씨가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잇따라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는 파견근로"라고 판시했다. 컨베이어벨트 라인을 따라 일하는 공정, 즉 직접공정 사내하청 노동자는 파견노동자라는 것이다. 2014년에는 컨베이어벨트 라인을 벗어난 간접공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바로 이날 선고된 현대·기아차 관련 사건 1심이다. 회사는 "직접공정과 간접공정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고나왔지만 패소했다.

"현대·기아차가 사내하청 쥐락펴락"

재판부는 합법파견과 불법파견을 구분하는 대법원의 다섯 가지 기준에 비춰 봤을 때 현대·기아차의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2015년 2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해고된 김아무개씨 등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들을 현대차 정규직으로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파견 여부를 "제3자가 근로자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근로자가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고용주가 근로자의 선발·교육·작업·휴게시간·근무태도 점검에 독자적인 결정권한을 행사하는지, 근로자 업무가 원청 정규직 업무와 구별되며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고법도 이날 "사내협력업체가 작업내용·작업인원 등을 결정하거나 변경하는 데 독자적인 결정권한이 없고 현대차가 구체적인 작업지시와 감독을 했다"며 "공장별·차종별로 정규직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를 구분하지 않은 채 업무 분담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대차가 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을 결정하거나 고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근태도 파악했다"며 "협력업체가 전문성과 기술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고 분사나 폐업 등 본질적인 경영 사항에도 현대차가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같은날 나온 현대차 남양연구소 사내하청에 대한 불법파견 선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공정이 아니라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는 수동적 컨베이어벨트 공정의 사내하청도 불법파견으로 봤다.

제조업 전반에 파장 미칠 듯

직접공정뿐만 아니라 간접공정 사내하청까지 불법파견으로 보는 판결이 계속 나오면서 제조업 전반에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는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완성품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많은 제조업체들이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있다"며 "간접공정 사내하청 사용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보는 판례가 쌓이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 전반에 불법파견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서비스업에서도 파견과 도급 기준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한 공장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삼성전자서비스 기사·KTX 승무원들처럼 원청의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가 서비스업에서 늘어나고 있다"며 "사법부는 이번 판결의 취지를 적극 반영해 여러 산업으로 확산하는 불법파견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이를 면밀히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판결과 별개로 회사는 기존 노사 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하도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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