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제조업 불법파견 논란의 한복판에 섰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원청과 하청노동자들이 빠르면 이번주에 직접교섭을 한다. 2004년 고용노동부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 이후 14년 만이다.

하청구조가 만연한 제조업에서 원청과 하청노동자가 직접 만나 교섭을 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제조업 대표사업장 원·하청 노사가 한국 사회 병폐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해결 실마리를 찾을지 주목된다.

노동부 중재로 농성 18일 만에 해제

금속노조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이달 2일부터 전날까지 진행한 노동부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지회 조합원 300여명은 지난달 20일부터 서울노동청 점거농성을 했다. 25명은 농성 이틀 뒤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농성자들은 △원청 참여 직접교섭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명령 △원청 불법파견 처벌을 요구했다. 노동부가 원청과 하청노동자를 협의·중재하는 것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권고사항이다.

노동부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농성이 시작되자 원청이 참여하는 교섭 틀을 마련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 결과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교섭 참여의사를 전달받았다. 현대차는 “노동부 중재 노력에 맞춰 원·하청 노조와 사내하도급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법적 이해당사자와 직접 이해당사자인 현대·기아차 사측, 정규직노조 및 비정규직지회 등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하되, 필요시 사안에 따라 현대·기아차 사측과 비정규직지회 간 직접교섭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중재안을 내놓았고, 지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현대·기아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현대·기아차에 여러 차례 직접교섭을 요구했지만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원청 입장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의 직접교섭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사용자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셈이어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제조업뿐 아니라 IT·건설·금융·공공부문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직접교섭 요구가 번번이 무산된 이유다. 지회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원청 직접교섭이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천100만 비정규직 함께 싸우자"

노동부와 지회 간 협의에 다소 시일이 걸린 것은 직접고용 시정명령에 대한 온도차 때문이다. 노동부는 그동안 "효과적인 실현방식과 교섭 중재 상황 등을 고려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지회는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노동부가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에 기초해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는 문구를 중재안에 담았고, 노동부의 '실행 의사'를 확인한 지회는 중재안을 수용했다.

지회 요구 중 '원청 불법파견 처벌'은 중재안에 담기지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고소·고발건은 검찰 지휘 아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최근에도 검찰 수사지휘가 있었다"며 "사건 처분에 앞서 노동부가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확약하는 것은 관련 법령과 수사 체계를 감안할 때 어려운 조치"라고 말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이날 점거농성과 단식농성을 해제했다. 노동부는 가능하면 이번주 안에 원·하청 직접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1천100만 비정규직을 양산한 주범인 현대·기아차에서 불법파견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열렸다”며 “전국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함께 일어나 우리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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