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관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화물운송 노동자 김씨는 지난해 10월 화물연대 파업에 동참했다. 하루 일을 공치면 손실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가 같은해 8월 발표한 소위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이 전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에 생업을 일단 접었다.

그런데 화물연대 파업 시작과 함께 과적을 단속해야 할 정부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차량의 과적단속을 완화하겠다고 공표하는 등 초법적이고 위법적인 조치를 잇따라 발표했다. 화주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운송료를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화물을 조금이라도 더 적재시키려고 혈안이다. 화물연대가 이런 과적실태 단속을 제대로 해 달라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아예 과적운행을 눈감아 주겠다고 공표했던 것이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김씨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을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운행을 멈추게 할 요량으로 그들의 차량 유리창을 깨뜨렸다. 그 과정에서 운전을 하던 사람이 이마에 찰과상을 입었다. 김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힘을 모아야 다 같이 잘살 수 있는데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파업이 마무리된 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처벌을 받겠다는 각오로 경찰에 자수했다. 유리창이 깨진 사람에게는 수리비를, 찰과상을 입은 사람에게는 치료비와 위자료를 보상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김씨는 구속을 면할 수 없었다. 고령에 거동까지 불편한 부모님을 챙겨야 하고 아내와 세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 교통법규 위반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온 삶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그런 사정들에 눈을 감았다. 1심 재판이 진행된 두 달 동안 구금됐던 김씨는 지난해 12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 1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회사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진 것이 소위 ‘비선실세’라는 자를 지원한 대가였다는 정황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라 논란이 크게 일었다. 많은 이들이 법원 결정에 의문을 가지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법원이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기각사유로 제시한 것 중 하나가 ‘피의자의 주거 및 생활환경 고려’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씨의 주거가 분명하고 그의 직업 등 생활환경이 쉽게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니 도망할 염려가 없다는 판단인 듯하다.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는 뉴스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화물운송 노동자 김씨였다. 그는 누구보다 가족들을 사랑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다만 그의 집은 이씨의 그것만큼 넓고 호화롭지는 않다. 김씨는 장거리 운행 때문에 새벽 출근과 한밤 퇴근을 밥 먹듯 하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린 효자였고, 화물연대 파업에 참가하느라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자녀들과 문자를 주고받던 자상한 아버지였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의 통화내역도 법원에 제출됐다.

일반 직장인과 달리 화물운송 노동자는 하루 운행을 멈추면 그만큼 벌이를 공칠 수밖에 없다. 이미 포화된 화물운송시장에서 다른 화물운송 노동자를 구하면 그만이라는 화주들의 배짱 탓에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운행을 멈출 수 없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14년 자료 기준으로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13.3시간 동안 일해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씨도 석방된 바로 다음날 새벽 인천에서 당진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절대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씨는 왜 두 달 가까이 구치소에 있어야만 했을까.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재청구될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특검이 실제로 영장을 다시 청구할지, 법원이 이전과 다른 판단을 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학에 부정입학한 비선실세의 딸이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모습에서 느꼈던 황당함, 허탈함 그리고 분노가 적어도 법원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을 피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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