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벌써 몇 주 전인가. 무노조경영의 대명사인 삼성그룹에 관한 이야기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전환하면서 핵심부문을 중심으로 사업전략을 추진한다더니 이른바 비핵심 부문으로 분류된 사업부문을 분할, 매각한다는 뉴스를 읽었다. 회사분할을 통해 프린터 사업부문을 분리해서 매각하기로 방침을 세우고서 세계적 프린터업체인 HP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프린터 사업부문을 분할하기로 했다는 설명을 했다고 하니, 분명히 회사는 프린터 사업부문의 분리·매각은 회사분할이라서 회사가 설명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을 것이다. 또 회사는 해당 사업부문 노동자가 분할된 회사로 이전을 거부하고 삼성전자에 남겠다고 해도 소용없다고 해당 노동자들에게 말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삼성전자로 복귀할 수 없는 것은 얼마 전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받은 TSST코리아 노동자들처럼 분리된 사업부문의 회사 운명에 고용 등 자신의 운명이 정해질 신세가 된 것일 게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회사분할금지 가처분신청 등 그것이 무엇이라도 분할돼 신설되는 회사로 이전하지 않고 삼성전자에 남을 수 있는 법적 방법이 있을까.

2. 회사분할에서 노동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회사의 분할제도를 규정한 상법이나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해야 할 노동법이 명시적으로 노동자의 운명을 정해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지금 회사분할에서 노동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대법원 판례가 정해 놓고 있다. 즉 대법원은, “회사의 분할에 따라 일부 사업 부문이 신설회사로 승계되는 경우, 분할하는 회사가 분할계획서에 대한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기 전에 미리 노동조합과 근로자들에게 회사 분할의 배경, 목적 및 시기, 승계되는 근로관계의 범위와 내용, 신설회사의 개요 및 업무 내용 등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그 승계되는 사업에 관한 근로관계는 해당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라도 신설회사에 승계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결해 놓았다(대법원 2013.12.12. 선고 2012다102124 판결; 대법원 2013.12.12. 선고 2011두4282 판결).

회사 분할의 내용에 관해서 미리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기만 하면 해당 부문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도, 달리 말하면 노동자가 거부해도 노동자는 분할된 회사로 승계되는 운명이라고 대법원은 선고했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가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회사분할에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노동자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다. 회사분할에서 회사의 권리와 의무가 분할계획서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니(상법 제530조의10) 노동자의 운명도 사용자들의 분할계획서에 의해 정해져 분할로 인해 설립되는 회사로 승계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 법이라고 이렇게 판결로 대법원은 선언을 해놓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선언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자유권도 우리의 대법원 판례 앞에서는 기가 죽는다. 물론 대법원도 노동자도 자유권이 보장된 걸 안다고 판결을 선고하면서 “헌법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이 근로자의 보호를 도모하기 위해 근로조건에 관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제4조), 강제근로의 금지(제7조), 사용자의 근로조건 명시의무(제17조)”를 인용하고서 그걸 무시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의 회사분할의 자유 앞에서 노동자의 이런 자유는 진정으로 자유가 아니었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회사분할에 앞서 “미리 노동조합과 근로자들에게 회사 분할의 배경, 목적 및 시기, 승계되는 근로관계의 범위와 내용, 신설회사의 개요 및 업무 내용 등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얼마든지 사용자가 무시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유라고 판결로 말한 것이다. 이런 대법원판례 앞에서 분할돼 신설되는 회사로 이전을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는 없다. 이런 대법원판례를 두고서는 노동자에게는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이나 회사분할금지 가처분신청을 하더라도 분할된 회사로 이전하지 않고 삼성전자에 남을 수는 없다. 노동자는 자신이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가 변경되는데도 사용자의 처분에 따르는 것 말고 법적 방법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는 회사를 분할해서 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에 보낼 법적 방법이 있는데, 노동자는 이에 따르지 않을 법적 방법이 없다고 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유가 있어도 노동자는 자유가 없다.

3. 분명히 자유의 세상이라고 선언했다. 이 나라는 법은 그 선언으로 정당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선언했다. 국가권력관계가 아닌 민사법질서는 계약 자유로 세워지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법의 고용계약도 노동법의 근로계약도 노동자와 사용자의 계약 자유로 정해진다고 법은 선언했다. 그런데 자유가 없다. 도대체가 노동자에겐 자유가 없다. 위에서 살펴본 회사분할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없다. 이뿐만 아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자유는 없다. 사용자가 정하는 대로 계약의 내용인 근로조건은 정해지고,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 고용 등 노동자의 운명이 결정된다. 뭐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복종해서 일해야 하는 걸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근로계약으로 당연히 포기한 자유다. 그런 포기한 거 말고 분명히 이 세상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동자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자유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오늘 이 세상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근로자가 자유로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의 내용,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바보다. 사용자가 정하는 내용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사람은 노동자가 된다. 사업장에서 사용자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할 근로계약의 내용을 취업규칙으로 작성하고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대법원은 취업규칙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해석, 적용해온지 오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성과연봉제도, 임금피크제도, 성과부진자퇴출제도 모두가 취업규칙이 문제다. 사용자에게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의 권한이 있다는 전제에서 다만 노동자에게 불리한 변경이니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가 정한 대로 과반수노조, 그 노조가 없다면 근로자과반수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노동자들은 법대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나라 노동자는 취업규칙으로 자유를 잊은지 오래다. 너무 오래여서 취업규칙이 불리하게 변경돼야 동의로 비난할 수 있는 거라고 할 따름이다. 계약도 아니고 법도 아닌, 사용자가 작성한 취업규칙이 사업장에서 법으로 행세하고 있어도 우리의 법원은 그런 취업규칙을 비난하고 있지 않는다. 아니 법원의 판결이 취업규칙을 사업장의 법으로 선언해왔다. 취업규칙 앞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없다. 상벌, 징계, 전보 등 인사는 물론 매각, 합병, 통폐합, 공장이전, 정리해고 실시 등 구조조정은 인사경영권이라며 노동자는 그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야 할 따름이다. 심지어 구조조정은 감히 노동자가 침해할 수 없는 경영권이라며 노동조합을 통한 교섭과 쟁의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판결해왔다. 이 자유의 세상은 자유가 없다. 자유의 세상에서 노동자는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없다. 이 나라에서 대법원판례는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분명히 노동자에게 있다고 선언하고서 노동자에게 없다.

4. 그러니 오늘 삼성그룹의 노동자에게만 없는 자유가 아니다. 회사분할로 사용자의 결정에 따라야 할 운명은 이 나라 모든 노동자의 것이다. 무노조 경영의 삼성그룹에서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정하는 취업규칙이 법으로 행세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자주적이라고 자랑해온 민주노조 사업장조차도 취업규칙이 사업장의 법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자유를 말살하고서 법인 양 행세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노동조합은 그걸 방치하고서 해마다 교섭해왔다. 그걸 전제로 단체협약을 체결해왔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빼앗긴 자유, 노동자에게 근로계약의 자유를 교섭과 쟁의로 되찾아 와야 했다. 그것이 노사협의회로는 할 수 없는 노동자의 단결체, 노동조합이 할 일이었다. 사실 임금, 복리후생 등 조건은 노조없는 삼성그룹의 노동자라도 노사협의회를 통해 얼마든지 사용자측과 협의해 정해 왔다. 그런 건 노사협의회에서 정해도 되는 거라고 해석되도록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은 정하고, 그렇게 법원은 해석, 적용해왔다. “근로자와 사용자 쌍방이 참여와 협력”해서 할 수 있는 그런 일이라고 이렇게 법은 말하고 있는 건데(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제1조 참조), 그러나 노동자가 빼앗긴 자유는 노사협의회로는 되찾을 수는 없다. 빼앗긴 자유는 자유를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가 있다. 협력이 노사협의회의 일이라면, 투쟁은 노동조합의 일이다. 자유는 노동조합의 일이다. 노동자의 자유 없는 세상에서 당연한 노동조합의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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