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대통령은 투표하는 국민이 만드는 겁니다. 세상에 어느 정치인이 표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발로 뜁니까? 다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 댑니다. 여러분들도 귀가 닳도록 들었지요? 청년실업 해소, 청년일자리 몇 십만개 창출.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왜 그럴까요? 여러분들이 정치를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투표 안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못 배우고 나이 든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버스 타고 읍내에 나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지성인을 자처하는 여러분들은 애인 팔짱 끼고 산으로 강으로 놀러 가지 않았습니까?”

어느 정치 드라마의 ‘명대사’라며 요즘 들어 많이 공유되는 글이다. 극 중의 대통령 후보는 대학생 유권자 무리를 앞에 두고 감동의 연설로 큰 박수를 받는다.

현실의 선거는 이제 딱 33일 남았다. 선거가 다가오니 또다시 20대 투표율 이야기가 나온다. 청년이 투표해야 한다는 조언과 더불어 ‘청년유권자 운동’의 과제가 청년층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투표율이 높아야 표심을 좇는 후보와 정당들이 청년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투표독려 캠페인을 성실히 하자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투표율 높이기’는 유권자운동이 책임질 몫이 아니다. 특정 연령집단의 투표율이 높거나 낮은 것은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연관돼 나타난 결과물이다. 한 달 동안 24시간 내내 투표독려만 한들 질적으로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투표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선언으로는 효과도 감동도 없다.

혹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는 격언까지 인용하며 투표하지 않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청년’들을 꾸짖는다.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니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언설도 있다. ‘20대 개새끼론’과 같은 논리구조다. 그러나 권리는 참여의 대가 혹은 참전의 전리품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투표하든 안 하든 인간다운 삶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한다.

또 누군가는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기성체제·기성정치·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조직해 투표율을 ‘혁명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혐오’다. 박권일 칼럼니스트의 지적처럼 분노는 변화로 향하지만, 혐오는 ‘탈조선’ 혹은 ‘공멸’로 이어진다. 반정치주의에 근거를 두고 정치참여를 호소한다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모순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지면, 돌아오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냉소일 뿐이다. ‘헬조선’은 대안을 만드는 언어가 아니다.

유권자운동은 선거 과정에서 정치참여를 수단으로 벌어지는 대중운동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싸움에 최대한 개입하는 것이다. 선거의 장에서는 현실 정세를 조건으로 ‘선택의 기준’이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 힘들이 경합한다. 예컨대 야당은 총선을 ‘집권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로 규정하고자 할 것이고, 또 다른 집단들은 각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경제민주화를 위한’‘소수자 혐오에 맞서는’‘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선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힘겨루기는 언제나 전선의 형성을 두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청년유권자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청년이 제시하는 ‘정치적·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모든 유권자의 기준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절대 청년층 투표율 높이기 정도에서 멈춰선 안 된다. 청년이 같은 세대의 청년에게 말 거는 것에서 그만둬서도 안 된다.

그것은 좋은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세대연대와 사회연대의 큰 그림, 그리고 다른 세대와 집단에까지 공명하는 메시지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구체적인 청년정책에서 출발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청년을 위한 것’이라는 상징을 통해 모두를 위한 것을 구성하는 정치적 실력이 필요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하는 지속가능한 다음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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