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 등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현관문을 나서고 있다. 정기훈 기자

 

발레오만도지회 금속노조 탈퇴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키워드는 ‘법인 아닌 사단(비법인 사단)’이다. 산별노조 하부조직인 지부·지회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조합인지 아닌지를 다투는 이번 재판에 ‘법인 아닌 사단’이라는 생소한 민법 용어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법원 “노조 형식보다 노조활동 실질이 중요”

1·2심 재판부는 “발레오만도지회는 금속노조 하부기구에 불과하다”며 독자성을 부인했다. 지회가 사단성(단체성)은 물론이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한 2010년 총회 결의가 무효라고 봤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회가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독자성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동조합과 유사한 독립된 근로자단체로서 법인 아닌 사단에 해당하는 경우 산별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사단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조직된 다수인의 결합체다. 주무관청 허가를 받아 설립등기를 하면 사단법인, 법인격을 취득하지 않은 경우 법인 아닌 사단으로 분류된다. 법인 아닌 사단은 법인격은 없지만 사단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사단법인과 같다. 대법원은 “법인격이 없더라도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삼아 정관·회칙 등 규약과 임원 등 기관을 두고 총회 등 회의를 개최해 주요 업무에 관한 의사를 결정해 온 경우 법인 아닌 사단의 실질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해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같은 민법적 개념을 재판에 활용했다. 산별노조 하부조직인 지부·지회가 법인 아닌 사단에 해당할 정도의 체계를 갖추고 운영해 왔다면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노조법상 노동조합만이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할 수 있다는 노조법 체계를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노조 형식보다 노조활동 실질이 중요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산별노조 남을까 말까” 기회비용 따지는 지부·지회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이 노동현장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2010년 발레오만도지회가 회사측 개입하에 조직형태변경을 추진했던 이유는 한마디로 ‘돈’ 때문이었다. 노조 조직형태만 바뀌면 기존 지부·지회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단체협약·예산을 고스란히 승계받을 수 있다.

반면 복수노조를 설립하는 경우 조합원 모집부터 교섭을 위한 사전절차까지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더구나 신규노조는 노동조합 활동의 핵심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2011년 7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면서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걸림돌로 작용하는 탓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산별노조 지부·지회의 노조 탈퇴를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지부·지회들은 산별노조에 남는 것이 유리한지, 탈퇴하는 것이 유리한지 수시로 기회비용을 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업 울타리를 뛰어넘어 산업별 단결을 추구했던 산별노조운동의 정신이 퇴색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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