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란 무엇인가. 1928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정한 '최저임금 결정제도의 수립에 관한 협약(제26호 협약, 이하 최저임금협약)'에는 사실 최저임금이라는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없다.

ILO 협약에는 해당 협약과 같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협약 내용을 보충하고 구체화하는 권고(Recommendation)가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협약의 짝은 제30호 권고다. 제30호 권고에는 "최저임금 비율의 결정을 목적으로 하여 최저임금결정기구는 반드시 해당 노동자들이 적합한 생활 수준(suitable standard of living)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적합한 생활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시대·경기·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온 가족이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일하고 나면 돈을 받을 수가 있고, 그렇게 일해 모은 돈을 합쳐 공동 의식주를 간신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최저임금도 ‘적합’할 수 있다.

몇 년 전 나는 ILO 기준적용위원회에서 서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인 니제르에 대한 심의를 본 적이 있다. 니제르에서는 일하고 받는 임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의 인신매매가 만연한 탓이다. 나이와 성별에 따른 구체적인 가격대까지 형성돼 있었다. 몇 백 유로였다. 인신매매된 아이들은 노예노동이나 강제 성매매로 유입된다. 니제르 정부는 이런 상황을 대체로 인정하며, 나라 상황이 너무 어렵다고 국제사회가 부디 도와 달라고 했다. 이런 나라에서는 아마 적합한 생활 수준의 ‘임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인간이라는 상품을 팔고 돈을 받는 경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근로자이자 자유인으로 일을 하고 임금을 받고, 그 임금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논의는 얼마나 까마득히 먼 이야기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성인이 적절한 시간을 근로하고 최저임금만 받아도 자신의 의식주 해결은 물론이고 다음 세대를 낳고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고 기본적인 문화생활과 사회참여도 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그런 나라의 이야기는 또 지금의 한국에서 얼마나 까마득하게 먼가.

이렇게 2015년이 됐어도 최저임금이 무엇을 위한 얼마만큼의 돈인지에 대한 컨센서스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니 50년 전에는 더했을 것이다. 그러니 최저임금협약이 제정돼도 “그거 받아서는 먹고살 수 없는” 형식적인 최저임금만 있는 나라들이 있었을 것이다.

1967년 ILO 이사회는 제168차 세션에서 개발도상국을 고려해 최저임금결정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ILO 보고서는 당시 최저임금협약에 실제 최저임금 비율을 고정하라는 실질적인 의무가 없다는 점에 특히 집중했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최저임금협약을 개선해야 하고, 기존 협약을 고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협약을 만드는 방식이 좋다고 다수결로 결론지었다. 이 결론을 따라 69년 ILO 총회에서 최저임금제도가 다시 논의됐고, 70년 '개발도상국을 특별히 고려한 최저임금결정에 관한 협약(협약 131호)'과 이 협약과 짝을 이루는 제135호 권고가 제정된다.

제131호 협약 "개발도상국을 특별히 고려한다"는 부분 때문에 마치 한국과는 먼 이야기인 양 오인될 수 있으나, 사실 이 협약은 앞서 본 최저임금제도 형식화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가 반영된 국제기준이다. 협약 비준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히 국내법적 지위를 갖는 규범이기도 하다.<다음 칼럼에서 이어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