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회 국제노동팀)

얼마 전 최저임금위원회는 2016년 최저임금을 2015년 5천580원에서 450원 인상한 6천30원으로 결정했다. 노동계의 1만원안과 경영계의 동결안이 대립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은 특히 시간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올해 받을 수 있는 실질임금”과 다름없기에 해마다 최저임금 결정은 노동자들의 삶과 직접 연관된 중요한 쟁점이 돼 왔다.

우리나라는 1986년 최저임금법을 제정해 88년부터 시행했다. 2002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저임금결정제도의 수립에 관한 협약(제26호)”과 “개발도상국을 특별히 고려한 최저임금결정에 관한 협약(제131호)”을 동시에 비준하면서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제도를 운용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국제사회에서 최저임금 논의는 어떻게 진행돼 왔고,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어떨까.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 약속한 기준대로 최저임금제도를 운용하고 있을까.

여러 나라들은 협약 혹은 조약(Convention)이라는 형식의 국제법으로 국제기준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약속은 ILO의 “최저임금결정제도의 수립에 관한 협약(제26호)”이다. 1928년 제정됐고, 1930년부터 발효된 협약이다.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에 이미 임금이 오로지 시장에서만 결정돼서는 안 되고, 임금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지지 않도록 국가와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때 최저임금협약은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여러 영역 중 임금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고, 임금이 이례적으로 낮은 경우라는 두 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에 최저임금제도의 필요성을 천명한 것이었다.

1948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된 이래 전 세계 인권논의의 바탕이 된 세계인권선언에도 최저임금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 세계인권선언(제23조)은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이 인간의 존엄에 적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고, 나아가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사회적 보호수단에 의해 보충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해 임금이 단지 노동에 비례해 제공되는 상품가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된 권리임을 천명했다.

유엔 총회는 1966년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을 제정했는데, 제7조에서 국가는 최소한 공정한 임금, 동등가치노동 동등보수, 노동자와 그 가족의 품위 있는 생활을 보장하는 임금을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이 조항을 해설하면서 "어느 나라에 최저임금제도가 있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임금이 노동자와 가족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수준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1990년 해당 조약에 가입했다. 그러니 비준한 조약은 국내법적 지위를 가진다는 헌법 제6조2항에 따라 이미 사회권규약 제7조에서 노동자와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는 생활급 수준의 최저임금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국가의 법적 의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도, 최저임금제도가 실제로 국가들을 제약하는 규범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ILO는 1962년부터 단체협상을 통해 최저임금을 정하라고 독려했지만, 일단 대등하고 공정한 단체협상이 이뤄진다는 전제부터가 당시 많은 나라의 현실과 멀었다.

1967년 ILO는 그때까지 최저임금제도 관련 협약들이 “최저임금 결정 절차 마련”에 집중했고, 구체적인 임금수준에는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꼭 노동자들이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 도입 취지를 적당히 외면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식적인 최저임금제도만 도입하는 나라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새로운 최저임금제도 관련 협약 제정으로 이어졌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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