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제도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이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 석학들도 한목소리로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임금불평등 해소에는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도와 근로장려세제(EITC)가 결합할 경우 빈곤감소 효과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분석 결과도 제시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임금, 소득분배 그리고 성장-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책대안’을 주제로 개원 27주년 기념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최저임금제 도입 OECD 회원국, 17곳→26곳으로 증가
최근 세계 각국은 최저임금제도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물결에 휩싸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국가는 98년 17개국에서 올해 26개국으로 증가했다. 독일은 올해 1월 전국단위 법정 최저임금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시간당 최저임금은 8.5유로(1만585원)로 우리나라(시간당 5천580원)보다 두 배가량 높다.
최저임금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99년 최저임금을 도입한 영국 정부는 내년 최저임금을 1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저임금 수준을 올해 전체 노동자 임금 중간값의 55%에서 2020년까지 60%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전체 노동자 임금 중윗값 대비 44% 수준이다.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교수(경제학과)는 “불평등 수준 확산에 대한 우려와 자국민의 실질 생활수준을 높이려는 사회적 압력과 정부의 노력이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매닝 교수는 노동시장과 최저임금 분야 세계 석학으로 이날 국제콘퍼런스에서 ‘법정 최저임금의 이론과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최저임금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시각도 변하고 있다. 일례로 OECD는 1994년 노동시장 보고서에서 “법정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주목했지만 올해 내놓은 고용전망 보고서에서는 “합리적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상실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매닝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은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완전경쟁을 전제로 한 노동시장이론에서는 임금이 증가하면 고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현실에서 완전경쟁시장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가깝다. 반대로 현실과 가까운 불완전경쟁시장에서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노동공급(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고용이 늘 수도 있다.
매닝 교수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의 최저임금 장기영향을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수준은 계속 높아졌지만 고용에 미친 영향은 뚜렷하게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반면 최저임금이 임금불평등을 해소하는 데에는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빈곤가구 퇴치에는 근로장려세제가 주효
최저임금 인상이 가구의 소득 불평등 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빈곤 가구층의 경우 구성원들이 일(노동)을 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어 최저임금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최저임금이라도 받으면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는 가구는 빈곤층 가구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셉 사비아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경제학)는 최저임금과 결합한 근로장려세제(EITC)를 빈곤퇴치를 위한 주요 제도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근로장려세는 근로소득이 있는 가구의 전체 소득이 일정 금액 이하일 경우 일종의 근로장려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제도다. 우리나라는 2006년에 제도를 도입했는데, 지난해 기준 맞벌이 가족가구 기준 총소득이 2천500만원 이하일 경우 연간 최대 210만원을 지급한다.
사비아 교수는 다수의 빈곤한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거나 적은 시간만 일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경우에는 오히려 빈곤 해소에 보탬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저임금제는 노동자 한 개인의 임금률에 주목하는 반면 근로장려세제는 가구소득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빈곤퇴치에 훨씬 효과적인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장려세는 빈곤층에 초점을 두면서 대상자의 순수입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뚜렷하다”며 “최저임금과 근로장려세를 결합할 경우 빈곤을 완화한다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은 생계비, 10명 중 8명은 핵심 소득원"
우리나라는 1986년 최저임금법을 제정했지만 10년여 뒤인 1997년에 최초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이듬해인 1988년에 최저임금이 처음 적용돼 올해까지 27년간 시행됐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대체로 여성·청년층과 고졸 이하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60대 이상 고령노동자 중 절반가량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최저임금이 가계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한국의 사례)을 주제로 발표한 오상봉 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령 은퇴자들이 어쩔 수 없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저임금 노동자는 정규직(35.9%)보다는 비정규직(64.1%)에서, 대기업(300인 이상 1.9%)보다는 중소기업(1~4인 45.5%·5~9인 24.2%)에서 많았다.
특히 최저임금 노동자 중 가구주는 46.39%다. 가구주의 배우자인 경우는 38.35%로 최저임금 노동자의 84.74%가 가구의 핵심 소득원이었다. 기타 가구원(보조 소득원)은 15.26%에 불과했다.
최저임금보다 적은(미만) 임금을 받는 노동자 77.46%(가구주 45.68%·배우자 31.78%)도 핵심 소득원이었다. 최저임금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핵심 소득원인 경우(전체 84.85%, 가구주 64%·배우자 20.85%)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오 실장은 “가구주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일 경우 절반 이상이 배우자가 없었고 있더라도 무직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며 “또 20% 이상은 다른 가구원이 있지만 수입원이 자신밖에 없는 상태라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보조 소득원이라는 주장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