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반월공단과 시흥시 시화공단에서는 파견직 아니면 취업이 불가능하다. 파견업체는 내국인은 물론 파견근로가 금지된 외국인을 사용사업장에 실어 나른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완성품을 만드는 제조업체 컨베이어벨트다. 파견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의 경우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는데 안산·시흥 공단에선 예외인 셈이다.

그 비결은 파견법 제5조에 있다. 이에 따르면 파견근로가 금지된 제조업도 일시적·간헐적 사유에 한해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는데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한다. 즉, 안산·시흥 제조업체는 생산인력 절반 이상을 3개월에서 6개월 단기 파견직으로 채운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파견·사내하도급 파견법 위반 적발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점검한 사업장 1008곳 중 53.3%인 538곳이 파견법을 위반했다. 안산·시흥 공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일시적·간헐적 사유도 없이 파견직 상시고용이다. 불법파견이 만연하다.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적발해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하더라도 사용자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간다. 파견직은 6개월 혹은 3개월 계약직으로 전환됐다가 해고되는 수순을 밟는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파견직과 계약직을 돌려쓰는 편법에 의존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뿌리기업’이 몰려 있는 곳도 안산·시흥 공단지역이다. 뿌리산업 진흥 및 첨단화에 관한 법률(뿌리산업법)에 따르면 뿌리기술은 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제조업 전반에 활용되는 공정기술이다. 뿌리산업에서 자란 나무가 바로 제조업이다.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이 뿌리산업이라는 의미다.

국내 뿌리기업은 2만4천997개로 평균 종사자는 10.4명으로 대부분 2~4차 협력업체에 해당한다. 뿌리기업 종사자는 26만명이며, 국내 제조업 종사자의 7.6%를 차지한다. 뿌리기업은 고용허가제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를 우선 배정 받을 정도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16일 뿌리산업의 인력난을 거론하며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새누리당의 5대 노동입법안이다. 이 법안이 뿌리기업의 인력난과 불법고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인 뿌리산업이 부흥하고 첨단화될 수 있을까.

이것은 새누리당의 착각이다. 그야말로 근시안적인 방안에 불과하다. 뿌리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를 20% 더 배정 받고도 단기 파견직과 계약직을 돌려쓰고 있다. 불법·편법 고용이 만연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뿌리기업에 파견을 허용해봐야 인력 운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파견근로만 활개친다면 청년들이 뿌리기업에 찾아갈 이유가 없지 않는가. 불법고용으로 비용절감에 매달리는 뿌리기업들에게 면죄부만 쥐어 주는 꼴이다.

문제는 뿌리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게 되면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파견을 규제한 현행 법체계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뿌리산업은 부품 및 완성품을 만드는 기초 공정산업이다.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과 뗄 레야 뗄 수 없다. 자동차의 컨베이어벨트는 금지하면서, 기초공정인 금형·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에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완성차업체의 불법파견을 합법화시키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뿌리산업법에 따르면 정부는 3년마다 뿌리산업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며, 이 계획은 뿌리산업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여기에는 인력양성 및 공급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진정으로 뿌리산업의 진흥과 첨단화를 위한다면 체계적인 인력양성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야가 합의한 이 법의 취지를 살리는 것이 정공법이다. 부작용이 큰 파견 허용은 해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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