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소위 ‘노동시장 선진화법’의 일환으로 지난 16일 당론으로 발의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이 입법화될 경우 재벌 대기업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모두 합법도급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로 불법적 고용관행임이 밝혀진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사내하청 고용관행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다.

민주노총 주최로 2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노사정 합의안과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법 대응 노동·시민·학계 긴급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새누리당이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제출했던 사내하도급법이 난항이 부딪히자, 파견-도급 구분기준을 노골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으로 사내하도급을 파견에서 제외시켜 주는 법안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발의 파견법 개정안, 핵심은 따로 있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파견법 개정안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전문직 종사자, 뿌리산업 종사업무에 대해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9·13 노사정 합의와 새누리당 법안 내용이 공개된 뒤 언론이 주목한 대목도 이 부분이었다. 전방위적인 파견확대를 의미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처럼 10년 넘게 불법파견 논란을 겪고 있는 대기업 입장에서 더욱 절실한 과제는 따로 있다. 법원이 불법이라고 규정한 내용을 즉각적으로 합법으로 탈바꿈 해주는 묘안이 그것이다. 이같은 내용이 바로 새누리당이 낸 파견법 개정안에 담겨 있다.

새누리당의 법안설명에 따르면 개정안에 신설된 제2조의2항은 ‘도급 등의 계약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한 것으로 보는 기준’을 담고 있다.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을 명확하게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수상쩍다.

법안에 따르면 다음의 경우에 해당하면 도급이 아닌 파견으로 볼 수 있다. 법안은 △도급 등을 한 자(도급인)가 도급 등의 계약에 따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도급 등을 받은 자(수급인)가 고용한 근로자의 작업에 대한 배치 및 변경을 결정하는 경우 △도급인이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지휘·명령을 해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경우 △도급인이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근로시간·휴가 등의 관리 및 징계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그밖에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는 경우로 파견의 기준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두섭 변호사는 “그동안 도급과 파견을 구분할 때 법원과 검찰·노동부 모두 ‘계약의 내용’, ‘계약의 이행’, ‘계약당사자의 적격성’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 안에서 여러 세부적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며 “그런데 새누리당 법안은 이 중 ‘계약의 내용’과 ‘계약당사자의 적격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제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맺은 계약이 실제로 도급계약이 맞는지 확인하는 기준이 사라지고, 하청업체가 도급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인 자본·기술·인력·사업지속성 같은 적격성지표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불법파견이 합법도급으로, 제조업 파견 전면허용?

결국 새누리당 법안에는 도급과 파견을 나누는 세 가지 지표 중 ‘계약의 이행’ 지표만 남은 셈이다. 대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일반적인 작업배치, 변경권’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결국 개정안대로라면 원청 사용자가 하청노동자에게 작업배치나 변경을 직접 명령해야만 파견 징표에 해당하는 것처럼 해석된다. 또 원청 사용자가 하청노동자를 직접 교육하거나 징계해야만 파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권 변호사는 “문제는 이 같은 지표는 원청 사용자가 외형을 변경하기 쉬운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마디로 개정안은 그동안 재벌 대기업이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파견-도급 판단기준을 그대로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법원 판례로 축적돼 온 여러 징표 중 원청이 변경하기 어려운 것은 없애고 변경하기 쉬운 것만 남게 되면, 결과적으로 현재 재벌 대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사내하청은 모두 합법도급의 지위를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현행 파견법이 금지하고 있는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의 파견 사용이 앞으로는 합법으로 둔갑하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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