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기업 내 말단조직인 팀 단위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은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마용주)는 1일 학습지업체 ㈜대교 소속 노동자 최아무개씨 등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총 1억1천86만2천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대교가 직급에 따라 최대 40~50%씩 임금이 삭감되도록 설계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직원 1~5명으로 구성된 팀 단위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근로자들에게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근로자 집단동의 범위는?=대교는 2009년 직급에 따라 직원정년을 만50~57세로 차등 적용하되, 별도 직무등급을 통해 만 44~50세부터 임금이 삭감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임금피크제 적용 첫해는 임금의 20%를 삭감하고, 2년째와 3년째는 각각 30%·40% 임금이 줄어드는 방식이다. 대교는 전체 직원 88.4%의 찬성으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취업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교는 이듬해 임금삭감률이 최대 50%까지 확대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찬반 의견을 취합했다. 전체 직원의 91.4%가 개정안에 찬성했다.

두 번의 취업규칙 개정 과정에서 대교는 말단조직인 교육국(팀) 단위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았다. 교육국은 일반적으로 30~40명 인원으로 구성되는데, 특수고용직 학습지교사를 제외한 정규직교사는 3~5명 수준이고, 1~2명에 불과한 곳도 있다.

정규직교사인 원고들은 “취업규칙이 두 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절차와 내용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며 소송에 나섰다. 회사가 소수인원으로 구성된 교육국 단위로 취업규칙 개정에 대한 동의를 구함에 따라 '회의방식'에 의한 근로자들의 자유로운 의견교환 절차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동의 과정에서 각 팀 상급자들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근로기준법(제94조)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것과 관련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교 사례처럼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판례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은 ‘회람방식’이 아닌 ‘회의방식’으로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근로자의 집단적·자율적 의사결정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만약 회사측이 개별 근로자를 따로 만나 취업규칙 개정안을 회람하고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과반수 찬성을 얻었더라도, 이는 집단적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절차를 거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퇴출용 임금피크제 '합리성' 결여=재판부는 “두 차례 취업규칙 개정 과정에서 피고는 근로자들로 하여금 회의방식을 통해 개정안의 수용 여부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도록 배려하거나 제반 조치를 강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교가 직원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사실상 회람방식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대교의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에 대해서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교는 임금피크제 도입 이유로 “교육비 지출 감소와 학습지 시장의 경쟁심화 추세에 직면해 기존의 연공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지양하고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른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확립해 노사상생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가 밝힌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빠르게 설정된 임금피크제 연령조건이 성과주의 임금체계와 어떤 점에서 부합하는지 의문이 제기되며, 유사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가 겪게 될 불이익의 정도가 극심하고, 피고 스스로도 (인사성과위원회 의결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이 근로자 퇴출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며 “이를 종합할 때 임금피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피고의 취업규칙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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