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악원으로부터 청소 업무를 위탁받은 ㄷ사는 소속 청소노동자들에게 지난 2013년 1월부터 2년간 총 1억3천600만원의 임금을 미지급했다. 입찰에 참여할 때 최저임금을 기반으로 낙찰 예정가격을 설계했는데, 초과근로수당 등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ㄷ사는 낙찰 이후 문제를 파악하고 적법하게 회사를 운영하려 했지만 애초에 낙찰가가 워낙 낮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청소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국립국악원 용역계약 담당자를 찾아 고용노동부가 공공기관에 용역업무를 위탁할 때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시중노임단가를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잘 알고 있다”는 허무한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서경지부는 ㄷ사 역시 같은 피해자라는 생각에 2014년 발생 체불임금에 해당하는 5천400만원만 지급받기로 했다. 서경지부에 따르면 5천400만원은 ㄷ사가 국립국악원의 청소 업무를 대행하면서 얻은 이윤보다 훨씬 큰 액수다. 공공기관에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는 업체와 계약하도록 강제한 고용노동부의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은 현실에서 처참히 무시됐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해야

결국 공공기관의 시중노임단가 적용을 유도하려면 지침이 아니라 입법적인 보완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수완 변호사(법률사무소 내일)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부문 시중노임단가 전면 적용을 위한 국가·지방계약법 개정 토론회'에서 “지침을 강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공공노련·공공연맹이 공동 주최했다.

노동부는 지난 2012년 공공기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시중노임단가 적용을 핵심으로 하는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마련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부터 한 달간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 479곳 중 160곳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서 변호사는 공공기관 10곳 중 3곳이 원가계산서부터 시중노임단가를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더라도 법적인 근거가 없어 피해를 본 용역업체나 노동자가 차액을 청구할 수도 이행을 요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기획재정부가 용역비용을 총액인건비에 포함시키는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봤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계약의 원칙을 명시한 국가계약법 5조에 “계약에 따라 고용된 근로자에게 적정한 임금 수준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도급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를 담은 근로기준법 47조에 국가계약법에 의한 사업종사자에게 정부의 정책 이행을 위한 별도의 임금기준이 있을 경우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변호사는 “입법적인 보완에 앞서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시중노임단가 적용 여부를 반영하면 즉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의 최저가낙찰제도를 최적가치낙찰 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노동시장 왜곡될 것”

하해성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입법 과정에서 시중노임단가 적용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가 관련 실태조사에 사립대학을 포함한 것처럼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공공성을 띠는 기관 전체에 적용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하 조직부장은 “시중노임단가 적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측으로부터 ‘이행할 경우 전체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쉽게 듣는다”며 “고용승계 및 유지 의무를 용역업체뿐 아니라 발주처에서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정열 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 과장은 “공공기관이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할 경우 경영평가 중 동반성장평가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 이행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근 기재부 계약제도과 과장은 “공공부문 청소·경비 근로자의 임금수준이 민간보다 높은 상황에서 전면적용할 경우 유사업무 종사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다”며 “비슷한 급여수준의 제조업 종사자에 비해 더 나은 근무요건을 초래하면서 노동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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