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는 특별한 인사들이 근로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로 청년과 비정규직 당사자다. 최저임금 협상을 ‘국민 임단투’로 부르는 이들은 최저임금위가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투명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다. 최저임금위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개한 전례가 없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매일노동뉴스>가 알권리 충족을 위해 최저임금위 회의에 참석한 청년·비정규직 근로자위원이 보고 들은 내용을 지면에 싣는다.<편집자>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요즘 메르스 소식에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조합원·후원회원 여러분 모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내일 제3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참석차 세종시에 내려갑니다. 앞으로 한 달간 본격적인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 회의에 임하겠습니다.”

6월3일 저녁 한 통의 문자를 남겼다. 각자가 발 딛고 서 있는 국가가 스스로의 삶과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기침을 할 때 보내는 경멸의 눈초리, 그리고 질병에 걸리는 것은 개인의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무한한 자기책임의 공포뿐이다.

전염병이라는 재난 앞에서 정부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손발 잘 씻고, 마스크 잘 쓰고 다니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몸 관리를 잘하라는 말뿐이라면 우리는 힘을 들여서 공동체를 가꾸고 유지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국가 운영원리가 원시공동체에서나 통용되던 적자생존의 법칙이라면, 고도로 문명화된 오늘날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다.

국가 시스템의 공백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애쓰는 개인의 무한한 자기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디 바이러스뿐이겠는가.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임금’은 시장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믿는다. 노동시장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최저임금 제도가 시장의 질서를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교섭력을 갖추지 못한 수많은 주변부 노동자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하기도 버거운 임금을 받으며, 스스로의 노고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대가를 받고 있는 모욕적인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 4명 중 1명, 비정규 노동자의 2명 중 1명은 월 150만원 남짓한 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다. 식비와 주거비 같은 생계 필수비용을 근근이 지출하고 나면 가계부의 문화·교육·의료·저축에 해당하는 항목에는 어떠한 금액도 적어 넣을 수가 없다.

오늘의 생존에 급급한 나머지 내일을 위한 희망 한 자락 품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광범위하게 펼쳐진 저임금 노동의 현실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정책특보의 이야기대로,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상처와 고통을 막는 ‘고약’과도 같은 것이다.

필자는 청년 아르바이트·사회초년생, 500만 저임금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조건을 결정한다는 무게감으로 지난 4일 최저임금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 임했다. 이날 회의의 최대 쟁점은 최저임금 심의의 근거가 되는 공식 소득분배율 기준통계 자료를 풍부히 하는 것이었다.

종전에는(2007년 의결사항)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만을 공식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를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그리고 5인 사업장과 1인 사업장을 함께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기준 통계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현행 최저임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중위임금 기준만 활용할 경우 “최저임금이 지금도 충분히 높다”고 주장하는 사용자 입장에 가장 부합하는 통계가 도출되고,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 최저임금 나쁘지 않네”라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날 3시간에 걸친 공방 끝에 노동자위원들이 제기한 안건은 표결에 부쳐졌다. 22명이 참석한 가운데 13명의 찬성표를 얻어 기준통계의 가짓수를 늘리는 노동자위원측의 제안이 가결됐다.

최저임금 심의의 공식기준이 되는 통계치를 풍부히 하자는 노동자위원들의 요구에 대한 사용자위원과 일부 공익위원의 태도는 문제가 많았다. “통계치를 늘려서 얻는 실익이 무엇이냐”, “보고서 제본을 다시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느냐” 같은 최저임금위 위상을 가벼이 여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박준성 위원장은 종전 2007년 의결사항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위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발언을 번복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위는 30년 가까이 운영돼 온 과정에서 발언한 위원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회의록을 단 한 차례도 공개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으로 위촉된 지 한 달 만에 ‘이 정도면 실명이 포함된 회의록을 공개하고 싶지 않을 만하다’는 생각이 사무치도록 들었다.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이 광경을 지켜본다면 얼마나 깊은 모멸감을 느끼겠는가. 5시간의 공방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몸뚱이가 한없이 무거웠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4일 표결 승리는 반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앞으로 수차례 괴로운 일전에 임해야 한다. 최저임금위를 지켜보는 수많은 염원과 함께하기에 두렵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전염병 공포 속에 마스크를 찾는 손길과 망가져 버린 노동시장에서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의 삶을 향해 안부를 묻는 것으로 글을 매듭짓고 싶다. 우리는 함께 잘 이겨 낼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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