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발레오만도지회 금속노조 탈퇴사건’ 공개변론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이날 변론에서는 산별노조 지부·지회의 집단탈퇴를 인정함으로써 ‘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회사측 주장과 ‘산별노조를 통한 집단적 단결권’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산별노조 지회가 소속 조합원 의결을 거쳐 산별노조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노조로 변모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원고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피고는 발레오전장노조다. 피고측 참고인으로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옛 발레오만도) 회사측이 참여했다.
금속노조를 탈퇴한 뒤 설립된 기업노조와 회사측이 한 팀을 꾸린 뒤 동일한 법률대리인을 내세워 소송에 나섰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산별노조와 개별 기업이 ‘노동조합 조직형태변경 제도’를 놓고 벌이는 대리전 성격을 띤다.
회사측 "노조 조직형태변경제도, 금속노조 독점지위 유지용 아니다"
표면적 쟁점은 2010년 이뤄진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유효한지를 따지는 것이다.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2010년 당시 발레오만도 회사측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공모한 뒤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작동했는데, 화룡점정이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였다. 당시 회사는 지회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지회 대항세력을 내세워 산별노조를 기업노조로 전환했다.
단체협약을 비롯한 지회의 기득권은 전부 기업노조로 넘어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의 저변에 깔린 쟁점은 산별노조 하부조직에 불과한 발레오만도지회에게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독자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독자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발레오만도지회가 독자적인 규약이나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된 조직체로 활동하지 못하고 △산별노조 위임 없이 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을 하거나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달 국회 입법조사처도 같은 맥락의 입장을 내놓았다. 입법조사처는 “원칙적으로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할 수 있는 주체는 노조법상 노동조합이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산별노조의 지부·지회가 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을 벌일 정도의 능력과 실체를 갖추지 못했다면, 조직형태변경 결의 효력 역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회사측 변호인단은 “단체교섭을 하거나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이 있는가 여부보다는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단체성을 갖췄는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산별노조에서 기업노조로 전환 결의를 이끌어 낸 조직이라면,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회사측 변호인단은 특히 ‘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를 강조했다.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로 전환하자는 조합원들의 자주적 의사표현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회사측 변호인단은 “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와 산별노조 조직보호 가치가 충돌할 때 전자를 우선시하는 것이 노동 3권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며 “노조 조직형태변경 제도 도입취지는 근로자 단결권을 보호하려는 것이지, 특정 산별노조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노조측 "독자적 교섭 가능해야 노조, 지부·지회는 노조 아니다"
이에 반해 금속노조측 변호인단은 ‘산별노조를 통한 집단적 단결권 보호’에 주목했다. 노조측 변호인단은 “노조 조직형태변경 제도는 기업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지원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집단적 단결권을 바탕으로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단체교섭에 임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라며 “이러한 집단적 단결권 역시 헌법의 보호 대상”이라고 맞섰다. 이어 “제도 도입취지와 반대로 ‘산별노조에서 기업노조로’ 전환을 인정하게 되면 산별노조 조직운영체계가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산별노조 조합원의 개별적 단결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노조 조직형태 변경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산별노조 지부·지회가 조직형태변경을 결의할 수 있는 주체인가 아닌가. 둘째, 법적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절차적 위법성은 없나. 셋째, 사용자의 지배·개입에 의한 결의인가. 넷째, 조직형태변경 자체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임원선출이나 규약개정 과정에 문제는 없나.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루고 있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만 심리를 진행했다. 이들 재판부는 지회가 사단성(단체성)은 물론이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지회가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나머지 세 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한편 회사와 기업노조는 대법원이 1·2심과 마찬가지로 기업노조의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무효라고 판단할 경우 그동안 체결된 임금·임금단체협약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조직형태변경의 기본요건인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은 무시하고 있다.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노동조합의 개념과 노동조합 조직형태변경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개념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 회사측 주장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측 변호인단은 “회사측은 노조 조직형태변경의 효과로 기업노조가 단체협약 체결 당사자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조직형태변경의 주요 요건인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이어 “노동조합과 일반 비법인사단의 결정적 차이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에 있다”며 “기업노조가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따른 단체협약 체결 당사자 지위를 유지하려면, 논리필연적으로 조직형태변경 결의 주체에게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부·지회 조직형태변경 결의 인정되면 교섭창구 단일화제도 '무용지물'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노사 양측 소송대리인을 상대로 한 대법관들의 질의응답도 진행됐다. 김소영 대법관은 “피고 주장에 따르면 발레오만도지회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단결력 차원에서 기업노조와 큰 차이가 없던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기업노조로의 전환을 결의해야 했던 이유가 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회사측 변호인단은 “강경투쟁 일변도의 금속노조에 속해 있는 것은 회사 이익과 상충한다는 것이 조합원 다수의 판단이고, 노사 상생을 중요시하는 노조를 선택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답했다.
민일영 대법관은 “만약 산별노조 지회 조합원 100%가 기업노조를 원해도 금속노조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현 체계가 개별 조합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노조측 전문가로 참석한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법상 노조가 아닌 노조의 하부조직이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는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과연 할 수 있느냐, 이것은 현행 노동관계법의 문리적 해석에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며 “만약 노조 하부조직의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인정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적용이나 단체협약의 운영·적용 등에 문제가 나타나고 노조활동에 대한 사용자들의 개입 역시 급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