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달 16일 산별노조 하부조직인 지부·지회의 노동조합 조직형태변경 결의 효력을 다투는 공개변론을 연다.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산별노조 지부·지회가 조직형태변경을 결의할 수 있는 주체인가 아닌가. 둘째, 법적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절차적 위법성은 없나. 셋째, 사용자의 지배·개입에 의한 결의인가. 넷째, 조직형태변경 자체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임원선출이나 규약개정 과정에 문제는 없나.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루고자 하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만 심리를 진행했다. 이들 재판부는 “발레오만도지회는 금속노조 하부기구에 불과하다”며 독자성을 부인했다. 지회가 사단성(단체성)은 물론이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지회가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급심 재판부는 조직형태변경을 둘러싼 나머지 세 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기면서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대해 ‘통상임금 판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노동계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하급심 판단을 파기할 경우 산별노조운동에 미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일노동뉴스>와 금속노조가 ‘노조 조직형태변경과 산별노조운동’을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합정동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노조 조직형태변경 논란의 당사자인 정연재(45)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비상대책위원(전 지회장)과 정준효(38) 금속노조 상신브레이크지회 지회장·김태욱(38)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가 참석했다. 좌담회 사회는 한계희 매일노동뉴스 편집부국장이 맡았다.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 비상대책위원
"회사측, 파업유도 후 기업노조 전환 공작"


사회 :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앞두고 매일노동뉴스와 금속노조가 긴급점검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인데, 말이 너무 어렵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시계를 2010년으로 돌려 보자.

정연재 : 발레오만도는 외국계 회사다. 사장도 늘 외국인이 맡았다. 그런데 2009년 한국인 사장이 부임했다. 현 강기봉 사장이다. 그 뒤로 노사 간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2010년 2월 회사가 경비노동자 아웃소싱 카드를 내밀었다.

경주지역 금속노조 거점 사업장이었던 발레오만도에는 그때까지 비정규직이 없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경비직은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아웃소싱을 밀어붙였다. 돌이켜 보니 회사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그때 시작된 것이었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린다고 하면 지회가 파업을 안 하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파업을 유도한 것이다. 실제로 지회는 부분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회사는 직장폐쇄 이틀 만에 용역경비 200명을 회사에 투입했다. 상식적으로 일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 :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정연재 : 지회 지도부들이 파업을 이유로 구속돼 조직력이 약화되자 조합원 상당수가 업무에 복귀했다. 이때 회사는 지회에 대항할 만한 인물을 내세워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구속된 지회 간부들이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회사도 지회도 2심까지 갈 줄 알았는데 법원에 선처를 해 준 셈이다. 그러자 회사는 지회 대항세력인 조조모(조합원들을 위한 조합원의 모임)를 통한 노조 조직형태변경을 서둘렀다. 얼마나 급했는지 조직형태변경을 위한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았다. 2차 총회까지 여는 해프닝 끝에 발레오만도지회가 발레오전장노조로 변경됐다.

사회 : 상신브레이크의 상황은 어땠나.

정준효 : 노조 역사로 치면 발레오만도지회가 상신브레이크지회보다 형님이다. 그래서 발레오가 먼저 당했고, 이어서 우리가 당했다.(웃음) 우리는 더 심하게 당했다. 지회 자체가 무너졌으니까.

경주 발레오만도, 대구 상신브레이크, 구미 KEC, 아산·영동 유성기업, 세종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안산 SJM, 평택·원주·익산 만도 등은 금속노조의 지역지부를 이끌어 온 핵심 사업장이다.

발레오도 그렇지만 상신에도 비정규직이 없었다. 이런 사업장들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타깃이 됐다.

상신에서도 회사측 파업유도로 볼 만한 정황이 있었다. 회사가 대구공장과 똑같은 라인을 갖춘 외부하청 공장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대외비 문서가 지회에 접수됐다. 이 문제로 노사가 공방을 벌이느라 교섭 타결이 지연됐다. 여름휴가가 끝난 뒤 지회가 교섭재개를 요청했더니 회사가 교섭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교섭을 해태하니까 지회는 당연히 파업수위를 올릴 수밖에…. 그 뒤의 과정은 발레오에서 벌어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준효 상신브레이크지회 지회장
"돈과 조직 없으면 해고자 못 버텨"


사회 :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됐다. 발레오와 상신에서 노조 조직형태가 변경된 2010년 당시는 일종의 복수노조 유예기간으로 볼 수 있다. 1년을 기다렸다가 새 노조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 않았나.

김태욱 : 기존 지회를 지키는 것과 복수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얘기다. 예를 들어 두 회사에서 진행된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효력이 인정되면, 해당 노조는 기존 지회의 재산과 단체협약·전임자 등 모든 기득권을 차지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핵폭탄이다. 기존 지회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정준효 :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회사는 기존 지회에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어떤 구실을 대서라도 해고하려 할 것이다. 돈도 조직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해고자들이 버틸 방법은 사실상 없다. 상신의 경우가 그랬다.

사회 :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당시 고용노동부가 제3노총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영포라인 문제도 있었는데.

정연재 : 노무현 정부 때 노동계 인사들이 노동부에 대거 차출됐다. 민주노총 간부를 지낸 황아무개씨도 그중 하나다. 노동부 과장 명함을 들고 다니며 노조파괴에 앞장섰다. 제3노총 설립에 앞장섰던 대공장노조 위원장들도 이 회사 저 회사를 찾아다니며 민주노총에서 탈퇴하고 국민노총으로 오라고 작업을 벌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금속노조 거점사업장에 대한 노조파괴 공작이 동시에 진행됐다.

당시 우후죽순 격으로 노조파괴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 회사에서도 똑같은 경비용역, 저 회사를 가도 똑같은 경비용역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담배도 나눠 피웠다.(웃음)

정준효 : 예전에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집회에 갔더니 덩치가 산 만한 청년이 ‘지회장님’ 하면서 아는 척을 했다. 누군가 봤더니 경비용역으로 투입됐던 대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총장실 점거농성으로 제적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경비용역으로 일했던 게 너무 창피해서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정연재 :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경주 다스에 회의가 있어 갔는데. 누가 아는 척을 했다. 경비용역으로 왔던 대학생이 다스 협력업체에 취직을 한 거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부산 경남 지역 경비용역들이 전국 분규 사업장에 지속적으로 투입됐다. 조직적인 개입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 : 대법원 전원합의체 얘기로 돌아가 보자. 발레오도 그렇고 상신도 그렇고, 금속노조를 와해하는 방식으로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이용됐다. 하지만 절차적인 측면에서 엉망인 부분이 많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심리를 하더라도 하급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은데.

김태욱 :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산별노조 지부·지회가 조직형태변경을 결의할 수 있는 주체인가 아닌가. 둘째, 현재 법적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절차적 위법성은 없나. 셋째, 사용자 지배·개입에 의한 결의인가. 넷째, 조직형태변경 자체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임원선출이나 규약개정 과정에 문제는 없었나.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루고자 하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만 심리를 진행했다. 재판부는 발레오만도지회가 금속노조 하부기구에 불과하다며 독자성을 부인했다. 지회가 사단성(단체성)은 물론이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정연재 : 하급심 판결문을 요약해보면 ‘물을 필요도 따질 필요도 없다’는 얘기로 요약된다.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조차 안 했다.

정준효 :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회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회의 독자성을 인정해 2010년 이뤄진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유효하다고 판단한다면.

김태욱 : 그때부터 나머지 세 가지 쟁점에 대한 심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회 : 핵심은 산별노조 하부조직인 지회가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이것이 공개변론을 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가.

김태욱 :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쟁점은 조직형태변경의 효력이지만, 그 저변에는 산별노조 하부조직인 지부·지회의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깔려 있다. 그와 관련해 쟁점이 많다.

우리나라 산별노조 운동이 곧 15년을 맞는다. 산별노조 건설 초기에는 법률적 평가가 많이 이뤄졌는데, 그 뒤로 10여년간 사실상 그런 과정이 없었다. 대법원이 산별노조 중간평가 개념으로 공개변론을 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 : 대법원에서 하급심 판결이 뒤집히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김태욱 : 산별노조의 중앙 집중성이 무너질 수 있다. 산별교섭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금속노조는 규약을 통해 조직 내부를 통제해 왔다. 중앙교섭에 참여하는 사용자가 얼마 되지 않지만 적어도 노조는 산별노조의 틀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다면, 다시 말해 산별노조 하부조직의 독자적인 결정권을 인정하면 산별노조 중앙 집중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이미 사업장별 교섭창구 단일화 여파로 집중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더욱 힘든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정연재 : 과거 금속산업연맹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준효 : 지회 단위에서 독자성이 인정된다면, 개인적인 생각인데 금속노조가 다음 선거 이후 무너질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회들도 금속노조에 불만이 많다. 예컨대 '돈 대고 몸 대고' 하는 부분에 관한 것이다.

사용자들은 중앙교섭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다. 현대자동차가 중앙교섭에 들어오지 않고 있지 않나. 제도 미비가 원인이기는 한데, 지회의 독자성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측이 미는 인물이 지회장에 당선된다면, 발레오와 상신에서 벌어진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지금은 새 노조를 만들려면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개별탈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회 단위에서 조직형태변경이 가능해지면 어떻겠나. 한 방에 모든 것이 날아간다. 이런 식의 노조파괴 행위가 우후죽순 이어질 것이다.

정연재 : 한마디로 자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결과로 귀결된다.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지부집단교섭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곳인데, 사용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불만이 많다. 산별교섭이 비용도 적게 들고 시간도 단축된다더니 이게 뭐냐는 식이다. 중앙교섭 따로, 지부교섭 따로, 지회교섭 따로이지 않나. 법원이 지회의 독자적 행보를 보장해 준다면 회사는 대항세력을 내세울 것이다.

김태욱 변호사
"비정규직 문제 풀려면 산별교섭 정착시켜야"


사회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보나. 산별교섭 정착을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은 어떤 게 있나.

정연재 : 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의 역사가 아직 15년이 안 됐다. 과도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이제 시작기라고 봐야 한다. 걸음마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산별노조의 중앙집중성을 위협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우리나라에서 산별노조가 다시 일어서기는 어렵다고 본다. 재판부가 산별노조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

정준효 : 대법원이 지부·지회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순간 산별노조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게 된다. 산별노조운동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법원이 지금처럼 사용자 편에 서서는 안 된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뭔가. 산별교섭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니까 기형적으로 지부·지회의 독자성이 강화되는 것 아닌가.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노사관계는 알아서 풀라고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예전만큼 힘도 없다. 파업도 힘이 있어야 하지 않나.(웃음)

김태욱 : 97년 노조법이 제정되면서 노조 조직형태변경 제도가 도입됐다. 기업별노조를 강제하거나 유도하는 조항이 많았는데, 그게 사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18년이 흘렀다. 민주노총만 봐도 전체 조합원의 80%가 산별노조 소속이다. 제도적 족쇄가 풀린 뒤 산별노조 전환이 빠르게 이뤄졌다. 법원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별노조가 지배적이라는 주장은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정부는 말로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친다. 산별교섭이 정착되면 그런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나 사업장 규모에 따른 격차 문제를 노동조합이 선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이 열리는 셈이다.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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