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국회 처리가 무산되자 청와대는 “국민과의 약속 못 지킨 여야에 유감”이라고 발표했다. 여야가 합의한 사안을 뒤집은 청와대가 되레 큰소리치는 모양새다. 정작 청와대는 국민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 비유한 속담이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청와대가 성내니 정부가 나섰다. 이번엔 개혁의 전도사로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전면 도입을 발표한 기획재정부가 주인공이다. 고용노동부는 한 술 더 떠 성과연봉제를 내용으로 하는 임금체계 개편까지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계와의 공감대나 최소한의 동의를 구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빈말’이 된 셈이다.

기획재정부의 발표는 그야말로 거창하다. 권고안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향후 2년간 6천700명의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간부직에만 적용되던 성과연봉제를 7년 미만 근속자와 최하위직을 제외한 전 직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성과연봉제와 임금피크제는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된다. 전자는 장기적, 후자는 단기적 과제다. 기획재정부는 임금피크제를 고리로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을 밀어붙이겠다는 구상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전체 316곳 가운데 56개 기관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제도의 전제조건일까 선택요건일까. 물론 고용 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정년연장법)에는 임금체계 개편이 의무조항으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관련은 없다. 정년제도는 양질의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정년제도를 개선했다. 반면 임금피크제는 독일의 일자리 나누기와 일본의 시니어사원제도에서 비롯됐다.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삭감하고 소정 기간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일자리 나누기와 기존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는 얘기다. 정년제도와 맞물리게 된 것은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정년보장형보다 주로 정년연장형과 고용보장형의 사례가 많았다.

기획재정부는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문제는 도입 방식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취업규칙 개정 또는 노사 간 단체교섭 사항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장할 수 있더라도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를 배제하고 도입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전제로 한 6천700명의 청년 일자리 창출까지 거론하고 있다. 권고안을 보면 임금피크제 유형뿐만 아니라 임금조정 기간과 임금지급률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노사 간 단체교섭 사항은 조목조목 거론하고 있다. 노사 간 자율적 교섭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의 가부를 결정할 수 없도록 한 셈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전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최대 8천명의 고용이 창출된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야 말로‘말풍선’에 불과하다. 노사 교섭 결과에 따라 임금피크제 도입 가부가 결정될 뿐만 아니라 임금피크제 유형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신규 고용창출 인원을 산술적으로 도출했는데 이는 임금피크제의 특정 유형을 전 공공기관에 강제 적용해 도출한 결과다.

공공기관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기관 종사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종사자 대다수는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을 원한다”고 토로한다. 또 “공무원은 임금피크제 없이 60세 정년을 실시해 왔다”며 형평성을 제기한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삭감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게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인식이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2016년부터 정년 60세를 시행하면서 공공기관에 총액인건비 수준을 유지하라고 강요한다. 역설적이지만 60세 정년 시행으로 늘어나는 인건비는 기존 종사자들의 임금을 깎아 감당하라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배경이다. 동시에 성과연봉제로 임금체계를 변경하라고 압박한다. 이러니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것 아닌가.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려면 노동자가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고려할 때 2016년에 시행되는 60세 정년제는 단기적 처방이다. 일본과 프랑스처럼 법정 정년을 연금수령 나이(65세)와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방식은 노사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가 강요하거나 일률적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제도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노사 당사자의 선택사항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