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론’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니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정부 대책의 방향이 정규직 보호장치 해제에 맞춰진 이유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경할 때 노동자 집단의 동의를 얻도록 한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기준을 완화하려는 일차적인 이유는 정년 60세 법제화에 따른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은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의 노사가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정부는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 카드를 집어 들었다”며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동의가 없어도 임금피크제 도입이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금피크제 늘리고, 연공급 해체?

나이를 기준으로 노동자 생산성이 낮아지는 시점에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한 유형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성과주의 임금체계’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과도한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를 직무·능력·성과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공급 체계를 완화하는 도구로 취업규칙을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근로기준법(제93조2호)은 “임금의 결정·계산·지급 방법, 임금의 산정기간·지급시기 및 승급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반드시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호봉제 같은 연공급 체계를 유지하던 회사가 연봉제를 비롯한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하려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

이때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근로조건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 경우라면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취업규칙 내용을 바꿀 수 없다.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이 근로조건의 불리한 변경인지 아닌지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연봉제의 경우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 총액은 유지하되, 인사고과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차등 지급하는 ‘제로섬 방식’이라면 불이익변경으로 본다. 반면 임금총액을 늘린 뒤 인사고과에 따라 추가분을 차등 지급하는 ‘플러스섬 방식’인 경우 불이익변경으로 보지 않는다.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도 사안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다. 노동부는 정년보장을 전제로 기존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보장형’은 불이익변경으로, 정년이 연장된 기간에 한해 임금수준을 종전보다 저하시키는 ‘고용연장형’은 불이익변경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가령 정년을 57세에서 60세로 3년 연장하되 연장된 기간의 임금을 정년 당시의 70% 수준으로 지급할 경우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동부의 해석이다.

이처럼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은 곧 불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단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합리성’ 위장한 일반해고 요건 완화

성과주의 임금체계 확산을 위해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제안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2003년 노동문제 전문가로 구성된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가 이런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경영계도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를 꾸준하게 요구해 왔다. “기업이 경영환경에 적응해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로조건 변경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노동자 집단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변경 자체가 불가능해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 경영계의 주장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이러한 경영계의 요구가 대폭 반영됐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같은 근로조건 변화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것으로 보고, 기업이 관련 내용을 담은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노동부는 “근로조건 변경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얻지 않아도 유효하다”고 판시한 법원 판례를 근거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부정하고 노동자 집단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본 법원의 판례가 훨씬 많은데도, 노동부가 법조계조차 통설로 보지 않는 소수의견을 앞세워 사용자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에는 성과주의 임금체계 외에 기업의 성과주의 인적자원 관리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른바 C-플레이어로 불리는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지금껏 법적 근거 없이 음성적으로 운영되던 기업의 저성과자 퇴출프로그램을 정부가 나서 양성화하는 모양새다. 더구나 사용자의 주관적 평가에 의해 노동자 누구나 저성과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동자 일반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가이드라인이 추진되는 배경도 수상쩍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예전에는 퇴출대상으로 찍힌 노동자들이 자괴감 등을 견디지 못해 결국 회사를 떠나는 일이 많았는데,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뒤에는 회사가 아무리 고강도로 퇴출을 압박하더라도 ‘정년까지 버티겠다’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며 “눈엣가시를 내보내기 어려워진 기업들의 강력한 불만이 취업규칙 가이드라인 제정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년 60세 법제화를 주요 성과로 자랑하던 정부가 오히려 정년연장 효과를 반감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꼴이다.

노동부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경계했다. 권혁태 근로개선정책관은 "일반해고에 관한 룰은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기업 내부에서 마련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룰을 만드는 노사 당사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정책관은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는 것은 객관적·합리적 기준으로 근로자를 평가하고, 교정 기회를 충분하게 부여하며, 해당 근로자를 적합한 일자리에 배치전환을 하는 등 해고회피 노력을 한 뒤에 공정한 절차에 따라 해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보다 센 가이드라인, 노사갈등 조장 우려

그런 가운데 이달 13일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또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등장했다. 이번엔 ‘단체협약 완화 가이드라인’이다. 노동부는 "노조 조합원을 전환배치하거나 인사이동할 때 노사가 합의하거나 노조 동의를 구하도록 한 단협 조항과 회사 징계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기로 한 단협 조항이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관련 조항의 개정을 유도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계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을 악용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단협 개악을 유도하겠다는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반응의 이면에는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실제 노동계는 앞서 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적용 매뉴얼 △복수노조 업무매뉴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같은 ‘유사품’의 위력을 절감했다.

노동부가 노동관계법 개정에 따르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각종 가이드라인을 활용해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사관계에서 정부 가이드라인은 법보다 강력한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온갖 가이드라인을 남발하고 있다”며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정부의 월권행위로 노사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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