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27일 오후 7시. 비정규직 관련법 협상을 벌이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년 전인 2005년 3월 국회 주도 노사정 협상을 주재했던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개악하려고 그 고생을 한 줄 아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경재 환경노동위원장과 배일도 의원은 “우리도 양보했으니 여당도 양보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불과 1시간 반 뒤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여야 합의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수정합의안이 만들어졌다. 수정합의안은 국회 경위들이 환노위원이었던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을 막아 선 상황에서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기간제 2년 사용 후 무기계약 간주(고용의제), 파견허용업무 제한과 파견제 파견 2년 후 직접고용 의무,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노동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한 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여야 쟁점이자 노동계 요구였던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과 파견제 고용의제 유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사정은 1년 전인 2005년 3월부터 6월까지 국회에서 민주노총이 참여한 가운데 협상을 벌였다. 기간제 고용 1년 후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기간제법 제정안과 불법파견을 포함해 파견 2년 후 고용의제를 적용하는 파견법 개정안이 협상의 최종안 혹은 절충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1년 뒤 이러한 성과마저 사라져 버렸다.

비정규직 관련법은 2007년 7월 시행됐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몇 차례 수정 논의가 있었지만 기간제법·파견법의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2009년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근거로 제시한 '100만 해고대란설'은 해프닝으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굴하지 않았다. 2009년에 이어 지난해 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에서 또다시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들고나왔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면서 "35세 이상 기간제·파견제 노동자의 사용기간 제한을 4년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아울러 고령자와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대상으로 파견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노동계가 반발하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일부를 파견범위에 넣을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노동계는 이에 기간제 기간제한을 폐지하고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맞섰다. 파견은 상시·지속업무에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계 다다른 기간제법, 차별시정 효과 없어

기간제법·파견법 시행 후 노동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기간제법이 시행된 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기계약직 혹은 중규직으로 불리는 새로운 고용형태의 등장이다. 또 기간제 규모가 줄긴 했지만 차별시정 효과가 미약했거나 거의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계상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정규직보다 처우가 좋지 않다. 공공기관에서는 중규직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정원 외 인원이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은 '2년 후 무기계약 간주'라는 규정을 담은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나타난 고용형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무기계약직이 기간제보다는 고용안정에 보탬이 됐으나 고용구조를 혼란시키고 차별을 고착화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사용사유를 제한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고용형태가 기간제한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기간제 규모는 줄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재분석해 최근 내놓은 ‘기간제법 시행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기간제 규모는 2001년 8월 145만명(전체 노동자의 11.0%)에서 4년이 지난 2005년 8월에는 그 두 배인 273만명(18.2%)을 기록했다.

그런데 기간제법 시행 후인 2008년 3월에는 229만명(14.3%)으로 감소했다. 2010년 3월(239만명·14.4%)과 지난해 8월(275만명·14.6%) 사이에는 전체 노동자의 14~15% 수준에서 고착화했다.<그림1 참조>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기간제법의 효과는 딱 4%”라고 말했다. 기간제법 시행을 전후해 전체 노동자 중 기간제 비중이 3.9%포인트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최근 추세로 볼 때 더 이상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설명이다.

기간제법 시행 초기에는 기간제가 줄어드는 대신 한시근로나 파견·용역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요즘 비정규직 문제에서 기간제보다 파견·용역이 부각되는 이유다. 최근에는 한시근로가 기간제와 함께 줄고 있고, 파견·용역 증가 폭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그림2 참조>

김 연구위원은 “통계 분석을 살펴보면 기간제법 시행 후 기간제 규모가 줄었고 시행 초기에 나타났던 풍선효과도 잦아들고 있다”며 “기간제한만으로는 더 이상 기간제를 포함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기 어렵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견노동자 늘어나는데 파견업종 확대한다고?

현행 파견법상 파견허용업무는 32개다. 법에 허용업무를 열거하는 이른바 ‘포지티브 방식’은 노동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그러나 허용범위가 전문지식·기술직을 넘어 운전·청소·경비직으로 확대한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노동자의 고급기술과 지식을 활용한다는 파견법 취지와 달리 저임금 노동자 양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상 관리직과 전문직을 파견업무에 포함하고 2년 기간제한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전문성 활용을 빙자한 저임금 파견 늘리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상 관리직과 전문직은 400개가 넘는다. 파견노동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55세 이상 고령자 파견업무 확대 역시 파견근로를 고령자 재취업 통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년 60세 정착을 위해 대기업 기술·연구인력을 일정 기간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게 한 뒤 다시 복귀시키는 방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은 고령자 임금부담을 줄이고 중소기업은 인력을 지원받는 효과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일본이 시행한 출향제도와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으로 출향을 나간 대기업 노동자가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정부 구상과 다른 결과다.

정부가 파견허용업종을 늘리겠다고 밝힌 대목은 더욱 우려스럽다. 정부는 △추가적인 고용창출이 가능하고 △인력난이 심하며 △노동시간단축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업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와 노사 의견을 수렴해 파견업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노동계가 가장 반대하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일부로 파견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직접생산공정 전체는 아니더라도 특정 분야를 파견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는 대신 불법파견 감독을 강화하고, 파견노동자를 상시 고용하며 노동조건을 개선한 파견업체를 우수업체로 인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기간제와 달리 파견노동자는 2007년 8월 17만5천명에서 지난해 8·월 19만5천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장은 “정부가 기업의 비용부담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비정규직 문제는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며 “상시·지속업무까지 파견과 외주화를 허용한 외환위기 당시의 메커니즘을 뒤집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비정규직 고용안정'부터

정부도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무기계약직 전환을 비정규직 핵심 대책으로 제시했다. 고용안정 보장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주요 기제라는 의미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지난 20일 “외환위기 이후 기간제·도급·용역으로 흘러온 노동시장 관행을 직접고용 혹은 최소 무기계약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나선 목적 중 하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무기계약직 전환과 노조 차별시정 신청대리권 부여 같은 차별시정 대책만 보더라도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제도 설계 혹은 노동시장 현실상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는 데 한계에 봉착했고 차별시정에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방안은 자명하다. 규모는 줄이고 차별은 시정하면 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고 격차를 줄이자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간제와 파견제의 기간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김유선 연구위원은 “기간제한 외에 사용사유 제한, 사용횟수 제한 같은 다른 제도를 함께 쓰지 않는다면 현재보다 기간제 규모를 줄이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이미 발표한 상시·지속업무의 무기계약직화는 사용사유 제한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사유 제한이 어렵지 않다는 설명이다.

상시·지속업무에 정규직 직접고용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상시·지속업무에 기간제와 파견직 사용을 금지하는 이른바 ‘입구를 틀어막는 사용사유 제한’이다. 이남신 소장은 “입구는 열어 놓고 출구만 제한하는 기간제한이 성공하려면 사용자가 선량하거나 이를 감시할 노조가 있어야 한다”며 “두 조건 모두 성립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출구제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을 지낸 윤애림 방송통신대 강의교수(법학과)는 “사유제한이냐 기간제한이냐는 결국 앞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일 것이냐 아니냐 하는 철학과 방향의 문제”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정규직 직접고용을 원칙을 확립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봉석·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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