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려던 야당은 물론이고 서울·인천 등 수도권 지방권력 탈환을 목표로 하던 여당도 조용하다.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구조작업에서 무능력을 드러낸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확산·유지될 것인지, 선거운동조차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야당이 여당의 조직력에 밀려 고전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때 정치권에서 지방선거 연기론이 제기된 배경이다.

세월호 참사로 후보 경선 등 지방선거 일정을 중단했던 정치권은 이번주부터 조심스럽게 선거 행보를 재개한다. 새누리당은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위탁이 필요한 지역인 부산·대구·대전·충남·강원 등 5곳에서 경선을 진행한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부산과 경남 경선을 29일과 30일 실시하기로 하면서 선거 일정을 재개했다. 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은 출마 진용을 사실상 마무리 지었다.

노동후보 돌풍은 기대하기 어려워

27일 현재까지 드러난 윤곽을 보면 6·4 지방선거에서 노동계 출신 후보의 돌풍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새누리당은 노동위원회 소속 몇몇 인사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노동위원회에는 국회의원과 노동계 출신, 경제계·학계·전문가 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이용득 최고위원의 경북도지사 전략공천설이 나돌았다가 불발에 그쳤다. 울산시장 후보로는 현대차노조 위원장 출신 이상범 전 울산 북구청장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울산에서 통합진보당·정의당보다 조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동계 배려라기보다는 인물난에 시달린 끝에 내린 선택이라는 견해가 많다.

비정규직·생활임금 공약 '눈길'

노동을 대하는 각 정당의 입장은 지방선거 공약에서 드러난다. 새누리당은 노동위원회 차원에서 지방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활동계획을 구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다만 출마한 노동위원회 위원을 측면에서 지원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당 차원의 지방선거 공약도 준비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통령 국정과제인 특수고용직에 대한 산재보험 확대적용 관련법이 같은 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당내 노동계 인사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다"며 "노동정책을 발표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노총과의 관계개선 문제도 중앙이 아니라 지역에 맡겨 두는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대선 당시 내놓은 공약을 중심으로 노동공약을 다듬고 있다. 이미 내놓은 '비정규직 없는 도시 만들기'와 '생활임금 도입' 공약에 더해 10여개의 추가 공약을 준비 중이다. 지역산업 육성·지역인재 채용 우대·고령자 일자리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비정규직에 초점을 맞춘 지역공약을 조만간 발표한다. 청소·시설관리 민간위탁 폐지와 비정규직지원센터 설립, 청소년 노동인권보호 조례 제정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 단위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을 앞쪽에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정의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 해소, 생활임금 확대, 청년일자리 확대를 공약했다. 공공직업소개소 도입과 노동복지센터 확대도 눈에 띈다.

노동당은 지자체와 산하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주요 정책으로 내걸었다. 진보정당들의 노동정책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민주노총, 진보정당 분열로 '갈팡질팡'

선거준비에 한창인 정당을 바라보는 노동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초 민주노총과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투쟁과 결합한 지방선거를 만들기 위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 용산참사 등 장기 투쟁이 이어지는 지역에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렀다.

대신 민주노총은 노동의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진보정당과의 정책협약식과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 공보물 제작에 나선다. 2012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한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녹색당 등 4개 정당과 노동정치연대·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등 2개의 노동정치세력을 민주노총 지지 정치세력으로 규정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향을 두고 적어도 여섯 개의 노선이 민주노총 내부에 혼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1명을 뽑는 선거구에 다수의 진보정당 후보가 있는 경우에는 모두를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진보정당들이 알아서 후보를 조정하라는 얘기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 울산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들이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낮은 교육감 선거에는 적극적으로 결합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친노동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 조직적으로 대응한다는 선거방침을 세웠다. 민주노총 일각에서는 친노동 후보 지지방침을 두고 새로운 야권연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근원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무너진 노조 정치활동을 복원하고 현장을 벗어나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터전을 형성하는 것이 지방선거의 최대 과제"라며 "정책연합에 의한 친노동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일부 비판이 있지만 새누리당의 압승을 우려해 차선의 선택지로 제출된 선거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정치방침 논란 재현될라 '조심조심'

이용득 전 위원장의 중도사퇴 이후 정치방침에 혼선을 빚은 한국노총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여부를 떠나 한국노총 출신 후보 당선을 선거방침으로 정했다. 2010년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의 정책연대 정신을 유지하되, 지역조직이 자유롭게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는 한국노총이 제시하는 노동의제 수용 여부를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지역본부와 노조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정할 경우 반드시 민주적 의사결정기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선거방침에 따른 논란을 최소화하고 지역 사정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둔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2012년 총·대선 과정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정치방침을 결정한 뒤 내부가 혼란스러웠다"며 "지방선거는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존재하는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정치방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일각 "지방선거는 사용자를 뽑는 과정"

양대 노총의 선거방침과는 다른 범주의 기류도 감지된다. 박근혜 정부의 '정상화 대책'에 반발하고 있는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방선거를 투쟁의 지렛대로 삼을 방침이다. 지방선거 전까지 정부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경우 선거투쟁으로 이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선거를 사용자를 뽑는 과정으로 보고 깊숙이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우호적 평가가 발생시킨 효과다. "좋은 사용자를 우리 손으로 뽑자"는 공공부문 노동계 일각의 주장이 노동계 전반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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