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정말 불쌍하죠. 갑갑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공기업 A사 노조간부 B씨가 최근 회사에서 채용한 시간제에 대한 물음에 대뜸 한숨을 내쉰다. A사는 지난달 초 58명의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했다. 군대를 다녀와 20대 중반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졸업을 앞둔 청년들이다. 매년 전일제로 뽑던 고졸채용을 올해는 시간제로 바꿨다.

“이 친구들하고 얘기를 해 보면 걱정부터 합니다. 채용공고 당시 교대제 근무를 할지, 단시간인지 이런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대요. ‘남은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런 불만이 있겠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취업난에 이렇게라도 취업하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드나 봐요. 회사는 열악한 조건을 무기로 삼는 거죠. 인턴과정을 거쳤다고 100% 취업하는 것도 아닙니다. 75%만 채용합니다. 꼼짝 못하는 거죠. 임금도 절반밖에 못 받는데 25%를 잘라낸다고 경쟁을 시키니 죽을 맛이겠죠.”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설비를 다루는 회사라서 사회 초년생들이 배울 시간이 많지 않다. 다음달 초 두 달간 인턴기간이 끝나면 이들은 곧바로 교대제 근무를 해야 한다. 일주일에 20시간 근무를 시켜야 하니 회사는 당장 교대순번을 어떻게 편성할지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회사는 현재 전일제 1명이 일하는 8시간을 둘로 쪼개 시간제 2명에게 할당할까, 아니면 2인1조로 8시간씩 교대근무를 시키고 3일만 일하게 할까, 이런저런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무엇보다 시간제 신입직원이 일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교대제의 경우 상위보직자와 하위보직자가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시간제는 대면할 기회가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B씨는 “시간제가 이 팀 저 팀을 들락날락하면 인수인계 대상자가 달라지면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장 관리자들이 도대체 설비를 어떻게 운영하려고 이러느냐는 불만을 얘기한다”고 귀띔했다.

고졸채용서 시간제 채용으로 갈아탄 공공기관

박근혜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확산 드라이브를 걸면서 공공기관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손발(공공기관)은 머리(정부)에서 보내는 신호를 재빠르게 잡아챈다. 지난달 말 열린 공기업 취업박람회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상당수 공기업들이 A사처럼 고졸채용에서 시간제로 갈아타고 있다. 고졸채용은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였던 과제였다.

박근혜 정부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 때 문제가 됐던 '할당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9월 진행된 공기업 기획조정실장단 회의에서 각 기관별로 ‘중장기 인력운용계획’을 작성하고 "신규채용 계획인원 중 일부를 반드시 시간제 근로로 채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기재부는 6월에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공공기관 시간제 근로 활성화에 대한 협조 요청’을 공공기관에 보내 "시간제 근로자 활용 여부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가 지난달 29일 집계한 2014년 공공기관별 신규채용계획(안)에 따르면 공공기관 295곳 중 136곳에서 시간제 1천27명을 뽑을 예정이다. 반대로 고졸채용 인원은 올해 2천512명에서 내년 1천933명으로 줄었다. 같은 고졸인데도 올해는 전일제, 내년에는 시간제로 뽑히는 희한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기업들이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라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올해 6월4일 고용률 70% 로드맵을 통해 2017년까지 23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중 38.7%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정부 기준에 따르면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의 기준은 무기계약직이고, 전일제와 차별이 없으며, 주당 소정근로시간이 15~30시간이고, 최저임금의 130% 이상을 받는 것이다.

공기업 시간제는 무기계약직인 데다 전일제에 비례해 급여가 책정되기 때문에 내년 최저임금(시간당 5천210원)보다 수준이 높다. 주 40시간 기준(108만8천890원)보다 급여가 많은 곳이 태반이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는 “정부가 만들려는 시간제는 여성이나 경력단절 노동자면 몰라도 청년노동자들처럼 신규로 유입되는 이들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식이면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패한 MB 시간제, 박근혜 정부서 살아날까

하나의 일자리를 둘로 나누는 분식이 좋을 리 없다.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하겠다는 ‘일반직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보는 시선도 싸늘하다. 정부는 내년부터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뽑는 등 2017년까지 4천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뿌리는 이명박 정부의 유연근무제다. 결과적으로 유연근무제는 실패했다. 2010년 중앙부처 11개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9개 기관을 대상으로 시간제근무 활성화 시범운영기관을 지정했지만 실제 시간제로 전환한 공무원은 41명에 불과했다. 시범실시는 그해 5월과 6월 두 달간 진행됐다. 공무원노조 공직사회 유연근무제 대응TF팀의 조사 결과 2010년 5개 시범실시 기관(시청 4곳·구청 1곳) 중 두 곳만 시간제근무 신청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3곳에서는 아예 신청자가 없었고 한 곳은 전체 직원 1만6천496명 중 단 1명이 신청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공무원 사회에서 시간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봉식 공무원노조 성북구지부장은 "공무원이 민원상담을 하다 퇴근시간이 됐다고 나갈 수 있느냐"고 반문한 뒤 "업무가 유기적이고 초과근무도 빈번한 현 시스템과 맞지 않아 신청한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지부장은 이어 “정부가 현장실태도 모르면서 일자리 늘리기에만 급급해 만든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육아 문제로 유연근무제(시차출퇴근제)를 했던 서울 소재 구청 공무원인 이혜영(40·가명)씨는 “앞으로는 시간제를 신청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씨는 “월급도 줄고 상사와 동료의 눈치도 보인다”며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으면 현실적으로 시간제 근무를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이런 함정에서 벗어났을까. 기존 시간제 계약직과 비교해 정년이 보장되는 만큼 일부 진전된 내용이 있긴 하다. 그러나 급여가 적고 정규직 전환이 안 되는 ‘중규직’ 신분이어서 한계가 뚜렷하다. 정부가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선택제 공무원에게 영리업무를 겸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른바 ‘투잡’을 허용한다는 것인데,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난만 사고 있다. 정부 스스로 저임금 일자리라는 것을 인정한 꼴이다.

취업준비생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7·9급 공무원 취업준비생들이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에 대해 “시간제를 20년 동안 하란 말이냐”, “모든 혜택이 반으로 줄어드는, 쉽게 말해 정년이 보장되는 시간제 알바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글이 쏟아졌다. “시간제 공무원을 많이 뽑고 기존 공채규모를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표출했다. 정부가 5년간 인력의 5%를 줄이겠다고 예고한 탓에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희우 공무원노조 정책연구소장은 “정규직 전환이 안 되고 공무원연금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다”며 “이명박 정부 시절 행정인턴처럼 얼마 안 가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소장은 “상후하박인 공무원 임금구조를 따져 보면 임금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며 “정형화된 업무가 아니면 업무연계성 때문에 시간제에게 핵심 업무를 맡기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근로계약서 다르고, 실제 근로시간 다르고

문제는 정부의 시간제 확대 시그널이 공공부문보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민간부문 노동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근로계약서와 실제 근무시간을 달리해 규제를 피해 가려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홈플러스는 기간제와 무기계약직 노동자들과 10분 단위 시간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본지 2013년 10월14일자 2면 '비정규직 울리는 홈플러스의 7.5시간 근로계약서' 참조>

홈플러스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회사는 하루 근무시간을 4.5시간·5.5시간·6.2시간·6.3시간·6.5시간·7.4시간·7.5시간으로 쪼갠 계약을 노동자들과 체결했다. 그런데 업무준비시간이나 퇴근 뒤 마무리시간을 합하면 실제 일하는 시간은 근로계약서보다 30분 이상 늘어난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과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이나 연차휴가·유급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은 이런 계약과 실제 노동시간을 달리하는 경우가 잦다. 한 기업의 경우 20년 동안 15시간 이상 근무하던 노동자를 상대로 2003년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뒤 갑자기 계약서상 소정근로시간을 15시간 미만으로 바꾸기도 했다. 2011년 해당 기업에서 퇴직한 노동자들이 법원에 퇴직금 청구소송을 제기해 현재 사건이 진행 중이다.

공공부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돌봄교사로 4년간 일한 김지연(42·가명)씨는 올해 2월 재계약 때 근무시간을 주 20시간에서 15시간 미만으로 축소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측은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지침을 지켜야 한다고만 했다.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꼼수라고들 했다. 최근에는 월급제를 시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100만원 수준이던 임금은 내년 3월 시급제가 적용되면 60만원으로 급감한다.

“그간 돌봄교실은 오후 1시10분에 시작해 5시까지 열렸는데 갑자기 2.5시간만 하라는 거예요. 수업준비 시간이나 뒷정리 시간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죠. 아이들도 힘들어해요. 돌봄교실 시간이 줄면서 나머지 시간은 컴퓨터반 같은 곳에 보냅니다. 월급이 반토막 나는 것도 걱정이고, 아이들 돌봐 주지 못하는 것도 걱정이고 그래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가짜 계약서'를 쓰고 있지만 마땅한 제재수단은 없다. 열악한 시간제 일자리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최진수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차장은 “업무실태와 다르게 계약서를 달리 작성하는 변칙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시간제 확산 분위기에 편승해 사업주의 이런 눈속임 계약이 유행병처럼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계희 기자 / 윤성희 기자
 

 'MB 시간제법' 못 벗어나는 '박근혜 시간선택제법'
“딜레마에 빠졌다.”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될 예정인 시간선택제 근로자 보호 및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시간선택제법) 제정안을 준비 중인 의원실 관계자의 탄식이다. 이 관계자는 “시간선택제로 기존(이명박 정부의) 시간제와 차별화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기업들이 거부감을 가진다”고 말했다. 만나는 기업 관계자들마다 "차라리 풀타임 기간제를 쓰는 게 낫다"는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달 5일 당정협의를 통해 경제활성화 대책 관련 중점법안 46개에 시간선택제법을 포함시켰다. 새누리당은 “정기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차질 없이 처리하도록 총력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법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간선택제법은 이명박 정부가 2011년 6월 입법예고했던 시간제 근로자 보호 및 지원에 대한 법률(시간제법) 제정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간제법은 기업의 시간제 채용 부담을 줄이고, 노동관련법에 산재해 있는 시간제 노동자 보호규정을 통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보호방안으로는 △근로시간 비례보호 원칙(전일제와 시간당 임금 같게) △초과근로 제한 △임신·육아, 교육훈련, 점진적 퇴직에 따른 근로시간단축 청구권 부여 △시간제 적합 직종 지정·권고 등을 담았다. 그러나 이 법은 야당과 노동계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시간선택제법도 밑그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점은 시간제로 전환한 노동자가 다시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는가에 있다. MB 시간제법은 "통상근로자를 채용하고자 할 경우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시간제 근로자에게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전환신청을 거부하려면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당정은 이를 감안해 시간선택제법에 ‘전환 기회’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얼마나 구체화할지, 이를 어겼을 때 벌칙조항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간선택제법이 시간제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시간제 보호와 관련한 내용이 근로기준법이나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돼 있어 굳이 새로운 법을 제정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관계자는 “시간제선택제법이 만들어지고 시간제가 비정규 유형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 기업은 본격적으로 시간제 유형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는 “주로 인력조정이 필요할 때 시간제로 일단 전환하고 추후 구조조정하거나 신규채용 때 정규직 채용을 피하고 시간제로 채용해 인력활용의 유연성을 기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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