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노동기구(ILO) 제102차 총회가 열리고 있다. 여느 해처럼 총회에 ‘협약 및 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 보고서’가 제출됐다. 협약 및 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는 ILO 이사회가 임명한 스무 명의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독립기구다. ILO 회원국이 협약과 권고를 잘 이행하는지를 심사한다. 물론 189개에 달하는 ILO 협약 모두를 심사하는 것은 아니다. 회원국이 비준한 협약 가운데 쟁점이 되는 것을 골라 다룬다.

균등 대우·최저임금·3자 협의

올해 보고서는 한국과 관련해 4개 협약을 심사했다. △제19호 노동자 재해보상에 대한 내외국인 노동자의 균등 대우 협약(한국 2001년 비준) △제111호 고용 및 직업에서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1998년 비준) △제131호 최저임금 결정에 관한 협약(2001년 비준) △제144호 국제노동기준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3자 협의에 관한 협약(1999년 비준)이 대상이다.

보고서 내용은 이들 협약의 적용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ILO에 제출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사용자단체인 경총과 노동자단체인 양대 노총 의견서를 검토해 전문가위원회의 입장을 밝히는 식으로 이뤄져 있다.

전문가위는 보고서에서 제19호 협약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수급권자가 외국에서 거주하기 위해 출국하는 경우 장해급여의 수급권 소멸을 명시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7조와 제58조가 내국인과 외국인의 균등 대우를 보장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또한 전체 임금노동자의 3.9%에 불과한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이 6.9%에 달한다며, 한국 정부가 사용자들로 하여금 산재사고를 정확히 보고하도록 만드는 제재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제111호 협약과 관련해서는 외국인 노동자·비정규직·여성·교사에 대한 차별 문제를 지적했다.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여성의 경제활동 증진을 위한 정책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교사가 차별받고 있는지를 따졌다.

전문가위는 보고서에서 2011년 한국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2천241개 사업장에서 7천994건에 달하는 사용자의 부당행위를 조사했으나, 벌금부과 74건과 기소 6건에 그쳤다고 지적하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노동부·경찰·법원·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사건의 건수·내용·결과에 대해 계속해서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비정규직을 위한 효과적인 차별시정을 위해 노조에도 차별시정권을 허용하는 조치를 고려할 것과 옛 민주노동당을 후원한 교사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에 서명한 교사에 대한 해고와 차별 사례를 언급하면서 한국 정부가 정치적 견해에 따른 차별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전문가위는 이어 제131호 협약과 관련해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 9명을 노사단체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명하고 있다는 노동계의 주장을 언급하면서, 해당 협약은 정부가 공익위원을 임명할 때 노사단체와 충분히 협의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위는 제144호 협약에 대한 보고서에서 고용노동부가 2010년 12월 국제노동정책협의회를 열고 제2호 실업에 관한 협약, 제47호 근로시간의 1주 40시간 단축에 관한 협약, 제139호 발암성물질 및 약품에 기인하는 작업상 위험예방 및 통제에 관한 협약을 비준한다는 계획을 승인했고, 한국 정부가 2011년 11월 3개 협약을 비준한 것을 “흥미를 갖고 주목한다”고 밝혔다.

전문가위는 이와 관련해 경총은 국제노동정책협의회가 ILO 협약 비준에 관한 의견을 모은다고 지난 5년 동안 단 4차례 서면논의를 진행했다고 알려 왔으며, 한국노총은 1년에 최소한 한 번은 3자 협의를 해야 한다는 협약 규정을 한국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음을 알려 왔다고 설명했다.

‘국제노동정책협의회’ 활성화해야 

국제노동정책협의회는 ILO 관련 정책과 국제노동정책에 관한 중요사항을 노사정 3자가 협의하기 위해 노동부가 자체 훈령으로 설치한 기구다. 의장은 노동부차관이다. 정부를 대표해 노동부차관·국제협력관 및 외교부 국제기구정책관·조약정책관, 노동자를 대표해 양대 노총 사무총장, 사용자를 대표해 경총 상임부회장 및 경총 회장이 추천하는 위원 1인이 참가한다. 기능은 △주요 국제노동정책에 관한 사항 △ILO 총회 등 주요 활동에 관한 사항 △ILO 협약 보고서 등에 관한 사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는 데 있다.

한국 정부는 ILO 협약 189개 가운데 28개만 비준했으며, 지난 12개월 동안 비준한 협약은 하나도 없다. 국제노동법인 ILO 협약 비준에서 한국은 후진국이다. 정부나 사용자만 탓할 일은 아니다. 노조의 대응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노사정 3자 모두 ILO 협약 비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부 산하 국제노동정책협의회를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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