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희 기자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의 새판 짜기가 한창이다.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책금융 재편과 금융그룹 지배구조 개편·금융감독체제 개편·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그야말로 동시다발적이다.

15일 이런 현안과 관련해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응해 야당과 노조가 대안을 마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셈이다. 현안 해결의 열쇠는 ‘건전한 금융생태’다. 키워드는 정책금융 확대와 서민금융 육성·실물경제 지원 확대·금산분리 강화·은행대형화 자제·금융소외 해소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걸·민병두 민주당 의원과 금융노조·금융경제연구소가 함께 주최했다. 발제 형식으로 발표된 ‘건전한 금융생태계를 위한 정책과제’는 이동걸 한림대 교수·전성인 홍익대 교수·정재욱 세종대 교수·강경훈 동국대 교수·이건범 한신대 교수가 공동연구를 통해 도출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나온 야권의 금융정책 방향 논의내용을 정리했다.

정책금융 재편,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통합

정책금융 재편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민영화, 정책금융기관의 분할·통폐합이 핵심 내용이다. 이동걸 교수 등 연구진은 민영화의 당위를 떠나 산업은행 민영화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산업은행의 자금조달과 영업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현재 상태로는 일반은행으로 독자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산업은행 자금조달 구조가 예수부채 비중(25.4%)이 낮고 원화와 외화 차입부채(50.6%)가 매우 높아 다른 시중은행과 정반대 형태를 띠고 있어 기형적이라고 평가했다. 은행이라기보다 여신전문금융회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시중은행과 같은 자금조달 구조를 만들려면 수신을 위한 점포를 대폭 늘려 50조~60조원의 차입부채를 예수금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실제로 민영화를 위해 점포를 79개로 늘린 바 있다. 연구진은 그러나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지점을 300~500개 추가로 설립하고, 직원은 최소 3천~5천명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반면 IBK기업은행은 산업은행처럼 차입부채 비중이 높은 탓에 자금조달 구조가 취약하기는 하나 대출을 일부 축소하면 중대형 은행으로 충분히 독자생존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더 큰 문제는 ‘민영화가 바람직한가’에 관한 것이다. 연구진은 “금융부문이 과잉 팽창됐고 앞으로는 양적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며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금융산업을 팽창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금융부문 과잉팽창은 금융기관의 '과당경쟁→과다 대출→투기조장→자산버블'의 악순환으로 빠뜨려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연구진은 기업은행을 민영화할 경우 중소기업 대출이 감축될 가능성이 높지만 민영화하지 않고 산업은행과 함께 정책금융기관으로 남으면 은행산업에서 정책금융 비중이 과도해지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산업은행을 정책금융기관으로 존속시키고, 기업은행은 민영화를 추진하되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하면서 절반을 정책금융기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책금융공사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을 민영화하지 않고 정책금융기관으로 존속시킬 경우 정책금융공사를 독립적으로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두 기관 통합을 주문했다.

금융그룹 감독, 방향은 무분별한 대형화 통제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은 대형화와 겸업화의 역사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 간 인수합병이 잇따랐고,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통해 겸업화가 확산됐다. 연구진은 이런 대형화와 겸업화에 대해 “형식적으로 크게 진전됐지만 이를 통해 얻고자 했던 금융시장 안정성이나 수익의 다변화·안정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연구진은 특히 대형화를 규제할 금융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진은 “대형화로 인해 생긴 시장집중이 우려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고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금산복합그룹도 체제적 위험을 야기할 정도의 규모에 해당하는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시장집중에 대한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지주회사가 영업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설 정도로 은행 위주로 운영되는 바람에 자회사 간 자산 포트폴리오가 비슷해져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나마 금융지주회사는 전체 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감독을 받지만 금산복합그룹은 개별감독이 원칙이어서 대주주나 재정 원칙이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시장점유율 규제를 강화해 대형화를 통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합병을 허용하는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연구진은 기업 결합 후 시장점유율이 30%를 초과할 경우에는 합병을 불허하고, 기업 결합 후 시장점유율이 10% 초과 30% 미만인 경우에는 점유율의 증가 폭이 5% 미만일 때만 합병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업종별 시장점유율이 10%를 초과하는 금융기관을 지배하거나 계열 금융기관의 연결기준 총자산이 30조원을 초과하는 금융그룹에 대해서는 별도의 거시건전성 감독을 부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한계희 기자


우리금융 민영화, 첫 단추는 지방은행 분리매각

연구진이 내놓은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도 대형화 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구진은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대형화 통제와 경쟁 제고가 긴요하다”며 “개별 금융기관을 분리 매각하거나 심지어 개별 금융기관을 다수 금융기관으로 분할해 매각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가 요구하고 있는 국민주 방식에 대해서는 “회수금액 극대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잠재적 지배자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하지 않은 채 우리금융을 지배할 수 있는 특혜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블록세일 역시 일괄매각이 실패할 경우 회사 분할이 불가피하고,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매각 프로세스는 네 단계였다. 첫 번째 단계는 광주은행과 경남은행 분리매각이다. 연구진은 “인수주체가 상이할 가능성이 크므로 사전에 분리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인수자의 자금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로 연구진은 예금보험공사 지분(56.97%)의 일괄매각을 시도하라고 주문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회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일괄매각이 매수자금 부담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저하시켰다는 점에서 차선책으로 금융지주회사를 분할해 개별 금융기관 단위로 해체해 매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때 각 금융기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회수하라고 조언했다. 연구진은 끝으로 경쟁 제한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는 매각에 대해서는 해당 금융기관을 분할한 뒤 개별 매각하되, 경영권 프리미엄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점유율 13.1%인 우리은행이나 9.3%인 우리투자증권이 여기에 해당하는 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