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30일 열린 전국해고자의 날 행사 참가자들이 무대 위에 오른 몸짓패의 율동을 따라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정 르포작가

전국의 해고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이들은 목청껏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라고 외쳤다. 민주노총 전국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전해투)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비없세) 등 7개 단체는 지난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전국해고자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정오를 기해 행사장 인근에 밥차가 도착했다. 사회를 맡은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38)씨가 한마디 했다.

“해고자가 돼 보니 가장 힘든 게 하나 있습니다. 그렇죠. 늘 배가 고프다는 겁니다. 오늘은 돈 안 받으니까 점심 마음껏 드세요. 오후 1시부터 본행사가 시작됩니다.”

해고자의, 해고자를 위한, 해고자에 의한…

이날 행사는 말 그대로 ‘해고자의, 해고자를 위한, 해고자에 의한’ 행사였다. 국립오페라합창단 해고자 3명이 무대에 올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개사한 ‘3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유레이즈미업(you raise me up)’을 불렀다.

이어 각종 집회와 노동자대회 단골손님이 된 ‘콜밴’은 자신감 넘치는 무대매너로 큰 박수를 받았다. 콜밴은 콜트-콜텍 해고자들이 만든 기타연주밴드다.

행사 말미에는 유성기업 계열사인 동서공업에서 4년 전 해고된 황영수(40)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사연을 담은 자작곡 ‘우유배달원 황씨’를 노래했다. 황씨는 힘찬 기타반주에 맞춰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 만들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봉혜영(48)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봉씨는 지난해 연말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 해고됐다. 개발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지 1년3개월 만의 일이었다.

“개발원이 지난해 연말 42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3개월짜리 단기 알바로 그 자리를 돌려막고 있어요. 해고자가 돼 보니 알겠더라고요.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에요.”

"힘없는 사람끼리 함께해야죠"

해고자는 아니지만 이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도 행사에 참여했다. 동대문 시장 철거민인 김아무개(40)씨는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철거민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직업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들이 우리와 같은 철거민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고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어쩌겠어요. 뭉쳐야죠."

자신을 '고려대 5학년생'이라고 소개한 조명아(25)씨는 "학교에서 투쟁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에 끌려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이 폐지를 모아 용돈도 하고 간식도 사 먹고 하는 것을 학교에서 못하게 하더라고요. 이후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리해고 역시 미래 노동자인 저의 문제죠.”

1부 문화행사에 이어 오후 3시께 복직투쟁 결의를 다지는 집회가 열렸다. 이호동 전해투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동안의 복직투쟁이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오늘을 기점으로 전열을 가다듬어 새로운 투쟁의 장을 만들어 가자”고 밝혔다.

국화 한 송이 들고 쌍용차 앞으로

대회가 끝나자마자 인근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범국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행사 참가자 300여명은 주최측이 나눠 준 국화꽃을 들고 그곳에 모였다.

이들은 “국정조사 실시하고 해고자를 복직하라”,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쌍용차 투쟁 승리하자”고 외쳤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추도사에 나섰다.

“박근혜가 국민 100%가 행복한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새빨간 거짓말이 돼. 옛날 못사는 사람들이 주인집 묘석을 발로 차는 비석차기를 하듯, 노동자·학생·시민들이 계속 모여야 해.”

잠시 후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 131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수화기 너머에 등장했다.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송전탑에도 봄이 왔습니다. 먼저 떠나간 24명의 동료를 추억하며 투쟁의 깃발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오죽하면 상하이차가 떠났겠느냐'고 했는데요. 노동자들의 죽음까지 조롱하는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끝까지 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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