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최강서 동지의 죽음을 맞으며 우리는 슬펐다. 정리해고로 쫓겨나고 다시 무급휴직으로 쫓겨난 이들이 희망을 갖지 못할 만큼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인 윤주형 동지의 죽음을 맞으면서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해고자의 활동이 정당한 노조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동지들에게 ‘노조활동을 인정하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의 비감함 속에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해고자들이 죽어 간다.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이 아니다. 생계의 고통으로 삶이 파탄 나고, 자본과 정권의 공격을 맨 앞에서 견디다 보니 정신적 피로도 쌓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해고자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함께 희망을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해고자가 어떻게 죽음을 선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동안 해고자는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 나가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간부들이나 핵심 조합원을 해고했다. 바로 그 해고자들의 피눈물로 민주노조를 지켜 왔다. 그래서 해고자 복직은 노동조합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기업들은 해고자 복직을 강경하게 반대하면서 해고의 공포를 가중시켜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투쟁에 나서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장기해고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서 전교조를 향해 "해고자를 조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면 전교조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협박했듯이 해고자 문제를 포기하라는 압력이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게다가 해고는 집단화하고 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때문이다. 지금 투쟁하고 있는 풍산마이크로텍·콜트-콜텍·쌍용자동차 등 헤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쫓겨났다. 정부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야기하는 지금 재능교육·현대자동차·보건복지정보개발원·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국민체육진흥공단·국립오페라합창단·학교비정규직 등 무수히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쫓겨났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제도로 ‘집단해고의 자유’를 획득한 기업들은 민주노조를 깨거나 혹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먹튀’를 하는 데 해고를 이용한다.

노동자에게 귀책사유가 없고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데도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그러한 해고는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저항하고자 하면 경찰력의 탄압과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견뎌야 한다.

더 큰 상처는 해고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조는 해고자들의 분투로 세워졌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일반화는 해고자들의 저항으로 간신히 확대를 멈췄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은 해고자 문제를 때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문제로 간주하고, 집단적인 투쟁의 과제로 인식하기보다는 다른 현안의 협상 과정에 끼워 넣기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것이 해고자들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다.

이제는 해고자들의 위상을 되살려야 할 때다. 기업들이 ‘해고의 자유’를 그렇게 원했던 것은 노동자들을 순종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해고되면 살아갈 수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용해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숨죽이고 살라’고 강요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해고자들은 단지 해고를 당한 자들이 아니다. 해고라는 폭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더 많은 해고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온몸으로 저항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삶과 투쟁이 기업의 통제전략을 무너뜨리고 이 저항이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해고자들의 투쟁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은 그래서 기업의 통제전략에 맞서는 핵심적인 투쟁인 것이다.

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고자들의 투쟁이 ‘해고의 자유’를 누리려는 기업의 통제전략을 무너뜨릴 수 있게 하기 위해 해고자들의 고통과 삶에 주목해야 한다. 해고자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것도 좋고, 해고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센터를 만드는 것도 좋고, 해고자들이 투쟁하면서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다.

이러한 방안에 더해 해고자들의 자부심을 되살려야 한다. 이들의 투쟁이 우리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힘겹게 지켜 온 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그 투쟁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오는 29일과 30일 ‘해고자의 날’ 행사가 열린다. 29일에는 해고에 맞선 투쟁의 역사와 과제를 밝히는 토론회가 열린다. 30일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해고자들의 의지를 모으고 연대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해고자의 날 문화제’가 진행된다. 해고가 일상화된 시대, 그렇게 힘겹게 싸워 온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그날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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