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15일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2도크에서 325톤 무게의 선박블록이 넘어지면서 작업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사망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대우조선에서 일한 지 겨우 1개월밖에 되지 않은 만 22세의 청년이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가 부상자와 현장 동료들에게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블록조립 과정에서 설계와 시공이 맞지 않았고 블록탑재 과정에서도 시공 도면과 다르게 외판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자 안전을 무시한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산재인 것이다.

조선업 산재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알려진 중대재해만 꼽아 봐도 지난해 10월 전남 영암 대불공단 원당중공업에서 폭발사고로 2명이 숨지고 9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중상을 당했다. 2011년 12월에는 울산 세진중공업에서 폭발사고로 4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 원당중공업의 경우 사고 하루 전날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가스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호소했지만 사측이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했다가 사고로 이어졌다.

이렇게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산재가 은폐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해 9월에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탈의실에서 쓰러진 사내하청 노동자가 구급차가 아닌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사고가 3번 이상 알려지면 원청에서 계약해지를 당하기 때문에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긴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재를 당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재보상을 신청하려면 해고를 당하거나 채용이 기피되는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일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업에서 이처럼 중대재해와 산재은폐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구조적 요인은 사내하청과 다단계 하도급의 확대에 있다. 한국조선협회에 따르면 주요 조선소 9곳(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한진중공업·신아SB·대선조선)의 사내하청 노동자 규모는 2011년 말 기준으로 7만6천670명이다. 전체 조선소 노동자의 68.5%를 차지한다. 조선소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고,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두 배 이상 많은 셈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9대 조선소의 원청노동자 산재사고 사망자수는 2004년 17명에서 2009년 3명으로 5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 반면 하청노동자 산재사망은 같은 기간 2명에서 10명으로 5배 늘었다. 이는 산재로 공식 보고된 경우만 집계한 것이다. 산재은폐가 강요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사고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이 위험한 작업을 강요당하다가 산재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계약해지의 위협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조선업계에서는 이른바 ‘물량팀’이라는 형태의 취업이 확산되고 있다. 8~10명의 노동자들이 물량(작업공정)을 받아 일하고 도급제로 보수를 받는데,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일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간접고용에다 다시 특수고용의 문제까지 겹쳐 임금체불이나 산재가 발생해도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악화되고 있는 조선업의 고용구조와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노동법상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당장 정규직 채용 원칙을 실현하기는 힘들더라도 하청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안전과 건강에 관한 책임을 하청이 아닌 원청이 지도록 만든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조선업과 유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건설업의 경우 노동조합의 오랜 투쟁과 요구로 임금과 안전 등에 있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를 만들어 왔다.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아직 조선업 하청노동자 조직률은 미미하지만 그나마 하청노동자들의 실태를 알 수 있는 것은 노조가 존재하고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과 안전, 그리고 노동기본권 보장에 있어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실타래처럼 얽힌 하청노동 문제를 푸는 고리가 될 수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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