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주최로 한국 무역정책에 관한 점검회의가 열렸고,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이하 국제노총)은 한국 노동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문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17쪽에 달하며, 국제노동기준의 측면에서 한국의 노동상황을 평가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요약한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WTO에 보내는 국제노총의 권고안을 소개한다.

"ILO 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하라"

무엇보다 국제노총은 한국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8개 가운데 아직도 비준하지 않고 있는 4개를 비준하라고 권고한다. ILO 핵심협약 가운데 한국정부가 비준한 것은 아동노동에 관한 협약 2개(제138호 취업의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 제182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와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2개(제100호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노동자의 동등보수에 관한 협약, 제111호 고용과 직업의 차별 대우에 관한 협약)다.

91년 12월 ILO에 가입한 한국정부는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105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특히 OECD 회원국 가운데 결사의 자유(제87호)와 단체교섭권(제98호)에 관한 ILO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뿐이다.

국제노총은 한국정부가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 조항을 시급히 폐지하고, 나아가 반노조 전술을 사용하고 노조원을 차별하는 사용자를 기소할 것을 요구한다. 국제노총은 “불법적인 파업의 경우에도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를 구금하거나 체포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 방해) 조사를 진행해야 하며,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한국정부에 요구한 ILO의 권고를 강조한다. 또한 기업 수준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폐지하고, 공공부문 단체교섭 의제를 노사 자율에 맡기며, 노동조건 이외의 사유로 인한 파업도 합법화하고, 파업 절차도 단순화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불법파업(unauthorized strike)의 경우라도 평화적으로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를 처벌하거나 기소해서는 안 되며, 공권력으로 파업 참가자들과 시위자들을 해산하거나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사업과 대기업의 쟁의행위에 대한 긴급조정을 폐지하고,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도 국민 전체 혹은 일부의 생명·안전·건강을 해치는 영역으로 대폭 축소하며, 교원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교원노조법을 폐지하고 교원에게 일반 노동법을 적용할 것을 국제노총은 권고한다. 또한 한국정부가 사용자의 통제를 받는 어용노조를 확인하고 해산시킬 것과 사용자에 의해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허용하고 전임자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조합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공공부문과 관련해 노동조합권을 부정당하고 있는 경찰관과 소방관은 물론 관리직 및 고위직 공무원까지도 결사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고,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며, 정치활동의 자유를 억누르는 관계법들을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정부는 전국공무원노조를 인정하고,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해야 하며,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는 불법 행위에 연관된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노동조합권 확대가 경제민주화"

한국정부는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인정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허용하고 이주노조 지도부와 조합원에 대한 추방과 부당한 기소를 중단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법 등에서 노동권을 침해하는 조항을 철폐하며, 고용평등 관련 규정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전면적으로 담아야 한다.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고, 저숙련·저임금 직업 종사자의 다수가 여성인 현실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며, 외국인 고용제도를 개선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권리와 직장변경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삶의 측면에서 성적소수자와 HIV에이즈 보균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를 신설하고, 종합적인 인신매매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국제노총은 권고한다.

대통령선거 국면을 맞아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이익을 개선하지 않는 경제민주화는 거짓말이다. WTO의 한국 점검회의를 계기로 국제노총이 제시한 권고안들은 경제민주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정리하고 있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되고,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을 때 경제민주화는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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