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나선 병원 노동자들 옆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병원은 크고 번듯해지는데, 거기 일하는 사람들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고 단결투쟁 머리띠 두른 저들이 말했다. 사람에게 투자하라고 외쳤다. 안전제일, 저 유명한 구호는 무언가 짓고 부수는 터 어디든 붙어 익숙하지만, 실상 야속한 말에 그친다. 안전을 지운 자리에 돈이 붙어 비로소 참말이 된다는 게 사람들 쓰린 뒷말이다. 철근을 아끼고, 비 오는 날 콘크리트 타설하던 건물에서 보글보글, 저녁 밥상이 하루 또 무사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권력자와 정치인의 잦은 약속 또한 저
된더위 속 길에 나서 길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는다. 모자와 쿨토시, 얼음물이 흔한데 휴대용 선풍기도 빼놓을 수 없다. 손풍기라고 불린다. 저 작은 것은 제 얼굴과 목을 겨우 달랠 만큼의 바람이 나오는데, 그 시원함이란 아스팔트 위에서 땀 흘려본 사람은 잘 안다. 여름철 집회 필수품으로 꼽힌다. 손에 쥐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어 목에 거는 형태의 것도 나오는데, 그 부담스러운 모양 탓에 대세를 이루지는 못한다. 구호 외치느라 올린 주먹들 속에서 종종 손풍기를 찾아볼 수 있다. 저기 쭉 뻗은 팔 끝에도 손풍기가 있다. 노조
비옷 입고 계단에 선 사람들이 조속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말했다. 내내 쏟아지던 비가 끝내 퍼부었다. 종이로 만든 구호 팻말은 젖어 구겨졌다. 형태 없이 찢어졌다. 비 소식에 사람들은 물에 젖지 않는 방수 신발을, 등산복 브랜드의 그럴듯한 우비를 챙기기도 했는데, 헛일이 됐다. 찔꺽찔꺽, 물이 빠지지도 않는 신발 속에서 발이 퉁퉁 불어갔다. 방수 우비 안쪽에선 땀이 샘물처럼 솟아 흘렀다. 보려고 쓴 안경은 눈가리개가 됐다.일하는 사람들에 우산이 되겠다고 나선 노조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속절없이 젖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종종 멀리 나아가질 못해 가슴에 녹슨 못으로 남는다. 쿡쿡 찔린 상처가 곪아 간다. 억울함과 분노를 품은 말들이 더욱 그렇다. 확성기가 필요한 이유다. 기자회견이, 1인 시위가, 집회와 파업 같은 단체행동이 모두 크게 말하기다. 그도 부족해 사람들은 굶고, 노숙하고, 바닥을 기는 행동으로 확성한다. 망루를 쌓아 높이 올라 농성하고서야 비로소 목소리가 높았다. 사람이 모였다. 단신 기사가 인터넷에 돌았다. 제 몸에 불을 놓고서야 유서로 남긴 말이 정치권 힘 있는 사람들 담벼락을 넘었다. 참담한 마음에 주먹 꼭 쥔 사람
웃지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오늘도 실패한다. 법정 앞을 기웃거리던 사진기자는 회전문 나오는 사람들 표정을 읽느라 긴장한다. 굳게 다문 입을, 옆자리 선 사람 눈매를 살핀다. 일찍 들이닥친 노안 탓인가, 보이질 않는다. 눈치껏 찍는 수밖에. 웃음이 얼마간 번지는 걸 본 누군가, 만세 포즈 요청을 했는데 화이팅에 그쳤다.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의 통화내용을 얼핏 듣고 나서야 분위기를 파악했는데, 어라, 마냥 웃는 사람이 거기 없었다. 파기환송은 기꺼이 반길 만 한 일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뻗치기’하던 기자와, 교대를 기다리던 경찰이 땡볕을 피해 감나무 그늘 아래에 앉고 섰다. 어어, 저기! 누군가 외쳤고 깜박 졸던 오디오맨이 화들짝 놀라 카메라 옆으로 달렸다. 허공에 새똥이 날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기자가 물티슈를 찾았다. 사람들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깃털도 나지 않은 어린 새 한 마리가 2층 옥상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렸다. 곧 떨어졌다. 날개를 두어 번 휘저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툭, 바닥에서 아직 죽지 않은 어린 새가 몇 번 고개 들어 움직였다. 옆자리
깃발 올려 행진하는 사람들이 사선에 섰다. 용산 방향이다. 사선은 힘이 세다고,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사진 책에서 배운다. 버릇처럼 써먹는다. 언젠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청년의 이야기도 어떤 책에서 배웠다.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먼 얘기였다.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한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 길에서 듣는다. 땡볕 아래 시커멓게 탄 사람들이 눈 붉혀가며 곱씹는 그이의 유언을 듣는다. 사실 저들 밥벌이 나선 일터가 사선이다. 죽고 다치는 일이 건설 현장에 흔했다. 온갖 불법과 탈법이 또한 많았다. 그것 바
맛있다는 동네 고기국수집에 저녁 먹으러 가는 길. 어딜 그냥 가는 법이 없어 아이들은 열 걸음마다 멈춰 논다. 쭈그려 앉아 뭔가를 줍는데, 눈 침침한 내가 보기에 딱 쓰레기다. 눈 밝은 녀석들이 감꽃이라며 반긴다. 실에 꿰어 목걸이 만들면 예쁘단다. 가까이 보니 과연 그렇다. 갈 길 바빠 독촉하던 아빠도 두어 개 주워 주머니에 담았다. 문득 평화로웠다. 생일 즈음인 저들이 예쁜 것을 많이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어디서든 안전하기를 나는 바랐다. 일하느라 컴퓨터 화면에 띄워둔 사진을 보면서 저게 무엇이냐고 아이가 자주 묻는다. 설
돼지저금통 배를 갈랐다. 오래 먹인 것이었다. 와르르 쏟아진 은빛 동전이 적지 않아 주말 아침 빈속인데도 배가 불렀다. 꽁돈일리 없지만 횡재를 한 기분이다. 오래전 까짓거 시험 좀 못 봤다고 형한테 불려가 혼이 난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반지하방 방충망을 뜯고 가출했다. 집 구석에 있던 빨간 저금통 하나를 들고 나섰는데, 묵직한 것이 참 든든했다. 친구 집에 자리 잡고 배를 갈라 쏟아 보니 갈색빛 십원짜리만 가득했다. 오백원쯤 탑을 쌓았을까, 문이 벌컥 열리며 아버지와 형이 나타났다. 가출은 하룻밤을 채 넘기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제133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1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각각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 노동자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과 민생파탄을 규탄했다. 사진으로 담았다.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1차 전원회의장. 사람 들지 않은 빈자리에 필기구와 명패, 그리고 흰 커피잔이 가지런했다. 주인 없는 의사봉과 명패 따위를 엮어 ‘파행’ 그림을 담으려는 사진기자의 뻗은 손이, 마실 사람 없는 빈 잔에 커피를 따르는 그곳 직원의 손이, 또 빨간 불 들어오지 않는 마이크가 사선 따라 가지런했다. 저마다의 할 일을 하느라 파행 속에도 질서는 있었다. 회의 진행이라는 위원장의 할 일을 하라며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촉구했다. 관계자 말고는 나가 달라는 최저임금위 실무진의 안내 말에 내가 바로
학교에서 밥 짓던 사람 여럿이 아팠다. 우연이 아니다. 커다란 튀김 솥 앞에서 가자미를, 돈까스를 튀겨 내던 그들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숨쉬기를 멈출 수가 없어 폐를 혹사했다. 쌀 포대와 업소용 식용유와 양파·당근 자루를 나르고 칼질하느라 근육과 관절을 갈아 냈다. 아이들 밥 짓는 일을, 또 밥벌이를 멈출 수가 없어 견딘 시간은 독으로 남았다. 일하다 아프거나 죽지 않게 하자는 뻔한 말을 하느라 길에 서고, 소리치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쏟아야만 했던 사람들은 서로 무척 가까웠다. 언니, 동생, 친구, 동료였고 동지였다. 그들
흔들린 사진은 첫 번째로 거른다. 초점이 맞지 않아도 그렇다. 망친 사진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빠르게 대응해 쓸 만한 장면을 기어코 챙겨야 하는 것이 사진기자의 숙명인데, 밥벌이 사진 훌쩍 이십 년 가까운 나는 여태 허둥댄다. 초점 검출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은 낡은 카메라 탓을 해 보지만 무상하다. 늙은 몸뚱이 탓도 그럴싸하지 않다. 몇 장면 망치고, 놓쳤대도 흔들리지 않는 뻔뻔한 ‘멘털’만이 나날이 단단해진다. 변명 늘어놓는 솜씨가 는다. 그런 걸 자기합리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골목길 혹은 대로변 해 잘 드는 곳이면 툭툭 꽃망울 터지기 시작해 겨울 다 지나 겨우 봄이다. 군데군데 노란 꽃잎 보며 사람들 설레는 때다. 흐드러져 마냥 이쁠 때도 아니니, 그저 기특한 것이다. 부지런 떨어 조금 앞선 것들의 힘이다. 무채색의 거리에 점점이 구멍을 낸다. 꽃샘이라고 아직은 찬바람 부는 길에 온기를 더한다. 맘 편히 쉬는 날, 꽃놀이 나설 생각에 발코니 구석 선반에 올려 둔 돗자리에 묵은 먼지를 턴다. 자전거 안장을 괜히 한번 닦는다. 엄두가 나질 않아 대청소는 며칠 더 미룬다. 노조 사무실 있는 건물 앞에도 개나리
언젠가 아들 자취방 찾아오던 엄마 양손엔 장바구니와 커다란 보자기가 묵직했다. 배추김치, 무김치와 멸치볶음, 오래 끓여 뽀얀 곰국이 거기 가득했다. 전철 타고 두 시간을 왔다는 얘길 듣고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지만, 그날 밥이 참 꿀맛이라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 웃었다. 온갖 집안 살림과 남편 자식 먹여 살리는 데 한 치 부족함이 없던 엄마는 밖에 나가 일 하는 걸 멈춘 적도 없었다. 공장 식당에서 주야 맞교대로 밥을 짓고, 빌딩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억척스러웠다. 다 늙어 여기저기 삐걱대던 엄마가 어느 날 이제는 힘들다며
언젠가 사람 들고 난 자리에 화분이 빼곡해 숲을 이룬다. 사람을 거른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대놓고 말하던 폴리스라인보다 세련됐지만, 그 말뜻이 다름없다. 아우성 넘쳤던 어디든 화분이 놓였다. 추운 날엔 사철 푸른 나무가, 따뜻한 날이면 빨갛고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영정 들고 행진 나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눈물을 예고한 광화문광장에도, 향냄새 끊이질 않던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있던 자리에도 어김없이 화분이, 또 화단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차마 화분을 밟지 못하고 선 자리에서 꺽꺽 울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지하철 첫 차 타고 시청 앞 분향소 나온 아빠가 구호 적은 선전물을 고쳐 다느라 바쁘다. 바람 때문이다. 구겨지고 찢어진 데가 많았다. 참, 초라하다고 아빠가 말했다. 이어 어느 정치인의 눈물과 약속과 거짓에 대해 비나리 하듯 읊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목에 목도리가 붉었다. 칼도 없이 이 악물고 테이프를 떼어 낸다. 강릉에서 열차 타고 온 아빠를 반갑게 맞이한다. 헌화 마치고 돌아서는 시민에 꾸벅 인사를 건넨다. 장갑도 없이 국화 서너 송이 들고 한쪽에 가만 선 아빠와도 눈인사 나눈다. 한 번씩, 영정 아래 쌓인 국화를 정돈
내복에 두꺼운 점퍼를 벗지 못하고 산다. 길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 탓이다. 칼날 같던 바람이 어느새 산들산들, 훌쩍 창밖으로 봄기운 스민다. 습관처럼 껴입은 나는 별 수도 없이 땀 흘린다. 그제야 봄 가까운 줄을 안다. 청소해야지, 이불을 빨아야지, 내 맘속 묵은 때도 좀 털어야지, 새 봄 맞이 계획을 세워 볼 만한 때다. 봄볕 소중한 줄을, 겨울 혹독하게 겪은 사람이 안다. 저기 병원 청소노동자는 인터뷰 기다리는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질 못하고 틈틈이, 꼼꼼히 걸레질한다. 창가에 가지런히 둔 화분을 제집 것인 양 살뜰히 살핀다.
설, 엄마 집은 추웠다. 여태 철없는 막내는 춥다 춥다 노래를 불렀고, 더 늙은 엄마는 안 춥다 괜찮다 대꾸했다. 등유 한 드럼에 얼만지 아느냐며 한숨 쉬었다. 마루 한구석 전기장판 깔린 자리에 다 큰 자식 손주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 귤을 까먹었다. 아궁이에 나무 때는 온돌방이 하나 있어 종종 등을 지질 수 있었다. 참기름은 한 방울만 넣어도 충분하다고, 옛날부터 엄마 잔소리가 대단했다. 많이 넣어도 맛있다는 걸 다 커서 알았다. 나는 온 집에 불을 켜고 다녔고, 엄마는 따라다니면서 불을 껐다. 엄마 매서운 손바닥이 날아와 내 등
CJ대한통운 원청의 교섭 의무를 확인한 판결이 나온 날, 예정한 기자회견 시각에 맞춰 현장에 도착한 사진기자 여럿이 허둥댔다. 회견은 진작에 끝났다. 그림으로 담기 좋은 만세삼창도, 서로 안고 좋아하는 모습도 지나갔다. 1년6개월을 기다린 판결이 예상보다 일찍 끝난 탓이다. 앙코르 요청에 한 번 더 현수막을 펴고 선 사람들이 재차 만세 삼창했다. 처음보다 굳은 표정이었지만, 두 번이라고 못 할 일도 아니었으니 대체로 자연스러웠다. 미리 준비했을 두 개의 현수막 중 나머지 하나를 펼 일이 없었으니 그럴 만했다. 진짜 사장을 찾아 묻는